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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나는 얼마안된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크리스마스 날이나 크리스마스 이브 날 교회에서 쏴주던 새우버거를 먹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먹었던 새우버거 진짜 개존맛이었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롯데리아 새우버거의 명태맛이 진짜 새우맛인 줄 알았을 정도로 어린시절 내가 먹을 수 있는 새우버거는 오직 교회에서 주는 새우버거 뿐이었다. 당연하지! 초등학교 시절 용돈도 못 받았고 중학교 땐 2만원 받았는데 무슨 햄버거를 먹어. 세트메뉴 한번 먹으면 용돈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기에 차라리 참는 쪽을 택했고, 그렇기에 교회에서 쏴주던 햄버거가 내가 유일하게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기회이자 천국의 문틈에서 신이 쏴주는 빛을 맞으며 신앙심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고 받은 월급으로 햄버거 사먹었거든? 그것도 새우버거보다 더 비싼 핫크리스피 버거 먹었거든? 그런데 이미 천국의 문은 닫혀버렸고 빛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모두 내가 키가 커지고, 머리가 커지고, 욕심도 커져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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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대는 어린시절에만 통용되는 경제단위에 대해서 아는가? 어린시절 난 100만원이 정말 큰 돈인 줄 알았다. 물론 과거의 물가를 비교하면 그때 당시 100만원은 큰 돈인 건 사실이지만 100만원만 있으면 평생 백수로 지내도 되는 줄 알았을만큼 매우 큰 돈인 줄 알았다. 그야 봉지 과자 하나가 5백원, 햄버거 세트가 3천원, 요구르트는 1개에 백원이었거든. 그래서 돈 욕심이 많은 친구들은 자판기만 보이면 거스름돈 나오는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좀 더 적극적인 애들은 자판기 아래로 막대기를 넣어서 싹 긁었으며, 나 같은 경우는 더욱 간교해서 오락실로 가서 동전 투입구는 물론 거스름돈 나오는 곳을 족족 확인하며 1일에 100원, 운 좋으면 500원 정도 벌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돈으로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먹으며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했지.
하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비는 물론 건강보험료, 국민연금처럼 부담해야할 의무가 내게 밀려 들어왔고 그 비싸다던 100만원의 3배나 되는 대학 등록금을 6개월 간격으로 내야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있는 경제관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급박함과 위기감, 그리고 탐욕이 자리잡게 되면서 100원은 돈으로도 보이지 않고 그거 하나 때문에 자판기 뒤지는 일도 안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어린시절 그렇게 커보였던 100만원을 손에 넣었음에도 성에 차지 않은 것은 물론, 그것을 얻기 위한 고생에 비하여 너무 부족해보이면서 욕심은 배로 커졌다. 1000만원 정도는 받아야하는데 겨우 100만원 받자고 그 더러운 사람 밑에서 짜증나는 일을 해야하다니. 그것도 평생. 안 짜증 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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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불만이 커지고 탐욕도 늘어나면서 만족이라는 것은 저 아득히 높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고 새우버거 가지고는 천국의 빛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1박에 50만원인 호텔에 머무는 건 일시적인 행복일 뿐, 5만원짜리 참치회도 먹을 때만 잠시 행복할 뿐 다시 일해야 할 생각에 짜증이 확 나더라고. 한 100억을 가져야 만족하려나? 그때면 모든 돈이 만만하게 보여서 쫒기는 느낌이 들지 않으려나? 그런데 어떻게 그 돈을 벌 수 있는데? 아니 뭘 어떻게 해야하는거냐고?
지금 난 크리스마스만 손꼽아 기다릴 필요 없이 내가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왜 자꾸 마음 한구석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버블경제를 겪고 난 후 회복하는데만 30년이 걸렸다고 한다지? 나 역시 어린시절 별 것 아닌 일에 하늘 높이 치솟았던 행복감이 떨어지고 30년 동안 바닥에서 기어 놀것 같은 기세로 가고 있다. 언제쯤 이 지루한 하락장이 계속 될까. 언제쯤 되어야 작은 호재 소식에도 행복감이 하늘 높이 치솟게 될까. 양적완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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