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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화이트모카 프라푸치노 - 진화를 막는 가성비

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by @blog 2024. 6. 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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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에게 받은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 오랜만에 스타벅스로 갔다. 뭐 스타벅스를 미워하는 것은 아닌데 요즘 저렴한 가격에 퀄리티도 좋고 양도 많은 프렌차이즈 카페가 하도 많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손이 안 가더라고. 그나마 한창 스타벅스에 꽂혔을 때 자주 마시던 메뉴, 피스타치오 프라푸치노를 마시고 싶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단종이 되어버린 음료라고 하네?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왜 단종시키고 그래. 스타벅스 돈 안 벌고 싶어? 그래서 결국 화이트모카 프라푸치노에 샷을 추가해서 마셨는데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어린 시절 죠리퐁에 우유 타먹는 익숙한 맛이었다. 물론 예전에 비해 명성이나 영향력이 떨어진 스타벅스지만 어디 감히 고급 커피와 죠리퐁 우유에 타먹는 맛을 비교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진짜입니다. 제 혀가 이상해서가 아니라고요. 눈을 감고 마시면 자판기마다 거스름돈 투입구를 뒤지던 어린 시절 시절의 죠리퐁 맛이 진짜로 난다. 나중에 이거 먹고 싶을 때 우유에 조리퐁 사서 마시면 되겠는 걸?
 


 
  이거 말고도 난 비싼 음식, 비싼 옷을 대신할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사서 비슷한 느낌을 내는 것을 좋아한다. 전문점에서 2만 원 하는 수플레 팬케이크 대신에 생크림 얻은 롯데 카스타드로 맛 구현하기, 호텔 대신에 호텔 느낌이 나는 모텔을 최대한 찾아다니기, 외국에는 갈 수 없지만 외국 느낌이 나는 국내 관광지 찾기, 멋진 남자친구를 사귀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보고 연애감정 대리만족하기. 과거에는 그 습관에 대하여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냐면 명품이라면 눈 돌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어떤 자만심 때문이었다. 봐봐, 화이트모카 프라푸치노를 마시고 싶으면 죠리퐁에 섞인 우유를 마시면 돈도 아낄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샤넬백이든 다이소 가방이든 차이점이 도대체 뭐냐고. 물건 담으면 장땡이지.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돈을 점점 벌고, 특히 잘 흉내 낸다고 해서 진짜가 될 수 없다는 서실을 알고 나서는 '짝퉁 선호하기 놀이'를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아무리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해서 죠리퐁 섞은 우유와 화이트모카 프라푸치노를 같은 음식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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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아니여도 회사에 써줄 사람 많다는 말을 달고 사는 회사 사장처럼 이 세상은 대체품들이 많고 특히 대체품은 캐리커쳐처럼 원본의 특징을 누구보다 강하게 흉내 내고 있다. 화이트모카 프라푸치노의 대체품이 반드시 초코향이 나면서 달달하고 우유도 들어가 부드러운 맛이 나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 다만 대체품이 원본 제품의 모든 것을 똑같이 구현하지는 못하는데 뒷맛, 혀끝에 감도는 향기, 음료의 질감과 같은 부분에서는 디테일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안의 내용물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오감을 넘어선 6번째 감각인 '분위기'는 대체품이 어떻게 구현해 낼 수조차 없는 요소이다. 만약 내가 만든 냉면과 고급 한식집 요리사가 만든 냉면의 가격과 맛과 구성요소가 똑같다는 가정하에 사람들은 과연 어떤 냉면을 많이 택할까? 장인의 정성과 세월이 담겨 있는 음식? 레시피보고 그대로 따라한 나의 음식?


  이처럼 대체품이 아무리 흉내 낸다고 해도 원가 절감이라는 이유 완전히 똑같이 만들지 못하고, 특히 오감을 넘어선 분위기는 결코 구현해낼 수 없다. 바로 그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이기도 한데 1%, 아니 0.00001% 차이일지라도 그 디테일한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디테일한 차이가 모이다 보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게 되니, 유인원이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작은 부분이 바뀌고 바뀌면서 진화하는 것처럼 가짜와 진짜의 차이는 바로 그 작은 차이가 모여서 결정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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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 디테일한 차이를 무시하고 금액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성비라는 미덕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가성비가 소비의 모든 것이라고 설파하고 다닌다. 다이소에서 사면 1000원에 구입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비싸게 주고 샀느냐, 이거랑 똑같은 음료 우리집 근처 가게에 천 원에 판다, 호텔 케이크는 비싸기만 하니 차라리 베이커리에서 2만 원 주고 사 먹는 게 현명하다, 국밥 사 먹을 돈으로 왜 비싼 파스타를 먹느냐, 라며 훈수 두는 것에 어떤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 가성비를 추구하는 게 나쁘지 않지. 저렴한 비용으로 욕망을 해소하면 얼마나 좋아. 우리가 뭐 전문가도 아니고 저렴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어줍잖게 흉내 낸 제품이 딱이지 뭐. 하지만 그렇게 가성비를 미덕으로 추구하는 현상이 저렴한 대체품만 만드는 문화를 발전시킬까 봐 걱정이 돼서 그렇다. 소위 말하는 '대략 특징만 잡아내서 베끼기'는 디테일한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기에 장기적으로 볼 때 장인정신을 외면하는 행위이기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고급화와 개성 역시 전체적으로 떨어지게 만들거든. 바로 그 예시의 국가가 중국인데, 다른 나라 관광지를 그대로 따라 만드는 것은 물론 드라마, 영화, 하다못해 어떤 트렌드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바로 위에 말한 '대략 특징만 잡아내서 베끼기'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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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너는 비싸기만 하고 전문성만 높은 가게에 가라."라고 한다면 내 말의 요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격은 저렴한데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 안 쓴 저퀄리티만을 찾는 사회, 그리고 그런 저퀄리티가 어떠한 것도 진화시켜주지 않는 문화를 만드다는 것에 경계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프랜차이즈점이 좋긴 해. 보통 가게보다 확실히 맛과 가격 모두 안전하기도 하고 말이지. 예전처럼 비싸기만 하고, 눈치 못 챌 작은 디테일함만 있으며, 양도 적고 허세 많아 보이는 가게가 요즘 많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행복함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개성 있는 카페와 남들이 모르는 디테일 함이 살아 있는 맛집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나만 느끼고 있는 건가?


 
  그러기에 난 개성적인 가게가 많이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가성비보다는 나의 뚜렷한 기호를 찾고 그 중심으로 소비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성비로 소비의 옳고 그름을 들이밀어도 그 물건을 그 가격에 선택한 이유를 말할 수 있다면 난 진정한 가치를 아는 현명한 사람이자, 평범한 사람보다는 한 단계 진화한 사람이 되겠지. 그래 맞아. 적어도 그 정도만큼만 된다면 어디서나 볼 법할 뻔하고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노스페이스 패딩, 평창패팅, 롱패딩과 같은 어떤 뻔한 유행의 흐름에서 벗어나 촌스럽지 않은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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