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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만 받을 수 있는 노후 보너스 - 칸타타 프리미엄라떼

에세이/가계부 대신 에세이

by @blog 2024. 4. 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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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칸타타 프리미엄 라떼를 내가 산 것이 아니고 아빠가 사주셨기에 가계부에 포함시키면 안되지만 오늘 겪었던 일을 기록하고 싶어서 그냥 포함시키기로 했다.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다. 확고함보다 관대함이 더 큰 사람이라서 계획 같은 거 심심하면 파괴하고 작심 1일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숙제 검사 10분 전에 부랴부랴 하던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왔다 갔다, 오락 가락, 기분에 따라서 행동해서 결정 장애는 기본, 칸타타 프리미엄 라떼 하나 고르는 것도 5분이나 걸렸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간 튤립축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핫도그와 번데기 사이에서 고민해서 부모님 속터지게 만든 사건과 (심지어 아직도 그 번데기가 너무 먹고 싶다...) 칸타타 프리미엄 라떼를 마실지 게토레이를 마실지 한참 고민했던 시간, 그리고 나와 다르게 확고한 흥의 세계에 빠져있던 품바가 생각 나더라고.

 

  이상하게 난 품바를 볼 때마다 어떤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아빠의 말로는 할아버지가 본인 흥에 이기지 못해 이 마을 저 마을 장기를 떨던 각설이었다고 하던데 그 피가 내 몸 안에 흘러서 인지, 결정 장애가 있는 나와 다르게 본인만의 확고한 세계에 빠진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그런 건지 입까지 벌리면서 공연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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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안다. 저런 직업이 겉보기에만 번드르르해 보이지 버는 돈도 적고 성공 확률도 낮으며, 무엇보다 조선시대 때부터 시작된 사농공상의 영향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자랑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말이지.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대기업 사무직, 선생님, 법조계에서 일한 사람보다 품바일 것이니... 왜냐하면 예술가라는 직업은 확고한 결정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후회가 적기 때문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판사나 선생님, 사무직이 꿈인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사무실에서 밤새도록 야근하는 것이 장래희망인 아이들도 희박한 확률이지만 있을 수 있으니깐.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방탄소년단 집산거 보고 진짜 미칠거같다고, 자기는 하기 싫은 일 꾸역꾸역 하는데 누구는 운 좋아서 비싼 집 샀다고, 도대체 저 애들 수능 점수와 대학교가 어디냐는 대기업 직장인의 하소연도 없었겠지. 직장인은 안정적인 월급을 때문에 하는 건데 왜 안정적이고 착실하게 돈 모을 생각을 안하고 예술가들만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호봉제를 노리고 있는 걸까? 욕심도 참 많아라.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이, 분명 어른들이나 세상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대기업 직장인이 가장 좋고 안정적이며 행복한 직업이라고 정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처럼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직업을 덥석 택했겠지. 아니 그런데 막상 대기업 직장인이 되어 보니 아니네? 생각했던 것보다 행복하지 않고 뿌듯하지도 않으며 돈만 보고 하는 일이라 아주 죽을 맛이네? 그때부터 후폭풍이 밀려오면서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되지만 두 개 다 선택할 수 있는 물건과 달리, 시간이라는 것은 한 번 선택 해버리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단 한번 있는 인생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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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튤립 축제 바로 옆 바닷가에서 구경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 아니 그런데 아까 그 품바가 지치지도 않은건지 우리가 돌아왔을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 시간으로 환산하자면 거의 3시간 가까이 혼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아빠 말로는 저런 일을 하려면 진짜 좋아하는 것 아니고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우리 아부지는 공중파 가요제에 신인상도 타고 작은 무대에서 노래도 불렀던 가수였기에 그런 생리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계시는데, 다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고 또 주변인의 회유로 인하여 포기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선택에 대해서 많이 후회한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예술가라는 직업은 참 매력 있는 직업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물론 위에 말한 것처럼 불안정한 호봉제 때문에 가난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생의 마지막 순간 “후회”라는 무거운 빚을 갚을 수 있는 두둑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거든.



  요렇게 보너스도 두둑하고 일확천금의 부자까지 될 수 있는 예술가를 왜 아무도 안하려는 거지? 하긴 예술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긴 하지. 결정 장애라고는 없는 겁대가리 없는 사람들, 굶어 죽는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확고함을 가진 미친 사람들만 할 수 있지. 예술가의 재능? 예술가의 기질? 그런 것보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확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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