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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빠빠 못하는 인류애 (료지 이케다와 ez2dj metagalac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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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경우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뚜렷한데 이 세상에 없는 경우 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의 팬아트를 보고 싶은데, 아니 이 음침한데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좀 더 사랑스러운 포즈가 보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경우, 오직 내가 만들 수 밖에 없는 상황,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걸? 인터넷이 전세계 사람들이 소통이 가능한다고 한들 개개인의 취향은 너무도 뚜렷하고 다르니... 이처럼 '취향 맞음의 기적'은 이렇게 손에 꼽을 정도로 없고 로또 맞을 확률보다 낮지만, 최근 난 '취향 맞음의 기적'을 경험하게 됐는데 내가 예술가였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거라고 생각할 만큼의 내 취향에 딱 맞은 예술가의 작품을 드디어 찾았다!

 

 

  뭐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평소 난 예술가 특유의 질질짜는 감성 + 뻔한 인류애 알고리즘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다 깨져버린 도로위에 핀 하나의 노란색 민들레... 이것은 518 민주화운동에 저항한 시민들의 꺾이지 않은 마음이다..." 이런 진짜 식상하고도 욕먹을 일 없는 도덕적인 예술 말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류의 작품은 너무너무 많고 이런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는 더더욱 많다. 고은 시인의 "오늘 너는 대한민국이었다"처럼 자기 혼자 뽕에 차고 자기 혼자 좋아하고 있으니, 나도 그 느낌을 좀 느껴보고 싶은데 예술가는 동네에 돌아다니는 이상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아 물론 예술이라는게 자기 만족의 경향이 더 크다는 것은 알지만 난 왜 매번 미술관에 가서 작가의 알아먹지 못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리송한 상태로 집에 가는 걸까?

 

  허나 료지 이케다의 작품은 기존 다른 예술 작품들과 궤도 자체가 다르다. 어찌나 다른지 작품에서 인위적인감성 자극 알고리즘의 향기가 전혀 풍기지 않아서 너무 내 테이스트인거 있지? 료지 이케다의 작품이 멋진 첫번째 이유, 그것은 인위적인 감동 자극 알고리즘을 최대한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오시이 마모루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처럼 촘촘하고 꼼꼼한 작화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처럼 데이터를 처리해나가는 데이터의 모션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두번째 좋은 이유는 경이로움인데, <데이터 버스 3부작>에서는 앞전에 말한 데이터를 착착착착 처리해 나가는 완벽함이 엿보이는 모션 + 그 모션이 단순 어떤 작은 공간에 국한되어있지않고 우주의 시작과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해나가고 모습에 입까지 벌리고 나 그 작품을 본 거 있지? 그런데 그 작품 속에 갑자기 쓸때없는 불청객이 하나 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놈.

 

 

 

 

 





 

 

 

 

 

 

(딱봐도 심해 기지에 지어진 비밀스러운 과학 기지, 미륵보살돔 같음)

 

 

https://www.youtube.com/watch?v=FkxAaxNA9O8

 

 

 

 

  사실 이런 수많은 데이터와 그 데이터 속의 데이터화 된 인간, 그리고 우주까지 확장되어가는 모습을 점멸 효과를 보여주는 작품 중에 ez2dj의 <metagalactic> bga가 있다. 해탈이라는 타이틀을 등장으로 경전문구로 보이는 촘촘한 한자들 사이에서 데이터화된 것처럼 형태가 불안전한 인간, 의식이 우주로까지 확장되어지는 듯한 이미지와 끝에는 세포처럼 보이는 주황빛의 육각형들의 조합 + 거기다 <데이터 버스 3부작>의 고주파와 데이터가 처리되는 소리와 다르게 <metagalactic>은 노래도 좋다. 그러니깐 단순 리듬 게임 BGA로만 쓰기에는 좋은 영상과 좋은 노래, 생각을 많이 주게 하는 작품이라는 거지. 더군다나 <metagalactic>  '해탈'이라는 주제와 더불어서 인간이 끼어있어도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은 반면 료지 이케다의 <데이터 버스 3부작>을 볼 때 갑자기 배아가 등장하고, 배아가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인간의 뇌, 장기 등의 데이터를 보여줬을때 결국 또 인간이야기냐?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인간놈이 나타나면 안되는 작품이다.

 

  다 된 작품에 쓸때없는 인간놈 끼어넣기, 큐레이터의 말로는 원래 료지 이케다의 작품에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2019년 이후로는 사람이 이렇게 종종 집어넣는다고 말할 때 나는 오징어 게임3에 갑자기 나오는 인간찬가런가, 뇌 속 뉴런과 은하단이 비슷하다며 비교사진을 보여주는 것처럼 자꾸 경이로운 우주와 인간을 연결짓는 행위, 그리고 결국은 인간은 답이다라는 인류애 찬가에 김이 샜다. 왜냐면 경이로움과 인간은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이고 그러는 와중에도 인간을 끼워 넣는 것은 인간의 전형적인 자의식 과잉이거든.

 

 

 

 

 

 

 

 

 

 

 

 

 

  사실 예술작품에서는 인간찬가가 모든 것의 목적이자, 해답으로 쓰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세계평화, 지구를 사랑하자, 인간을 사랑하자, 이것을 어떤 모든 것의 답인 줄 아는 작품을 정말 많이 봤다. 하지만 오징어게임3의 뜬금없는 인간찬가에 사람들이 갸우뚱하는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말하는 인간 사랑에 나는 공감도 못할 뿐더러, 오히려 인간의 자의식 과잉 같아 보인다. 왜냐면 미술관을 나와 회사로 가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 대접받기보다는 도구로써 취급받는 경우가 훨씬 많고, 이런 환경에 노출된 사람에게 인간찬가는 너무도 먼 이야기기이자, 예술가들의 여유로운 소리로 밖에 안보이거든. 광대한 우주 속 먼지만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일 거라는 기독교 세계관이 구식처럼 보이고, 또 그러한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노발대발하는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구린것이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오히려 ez2dj의 <metagalactic> bga처럼 인간이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불교와, 불교에서 목적으로 삼는 해탈, 그게 더 세련되어 보인다. 그래서 내가 료지 이케다의 <데이터 버스 3부작>에서 이질감을 느낀 이유는 우주 천체를 분석하는 경이로운 데이터 모션 중에 갑자기 등장하는 인간이 등장했기 때문, 즉 다 된 완벽한 데이터에 인간을 뿌려서 그렇다.

 

  나만 그런가? 뭔가 인간냄새가 풍기면 그거 뭔가 구려보이지 않음? 특히 동조라는 감정이 무조건 선으로 여겨지는 예술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그런 류의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선 내게 있어서는 인간 특유의 질질짜는 감성이 풍기는 예술에 자꾸 구린 느낌, 인위적인 감동 알고리즘이 느껴지면 우선 기피하고 싶어진다. 석양은 인간에게 감동을 주기 위하여 피어오르지 않는다. 정확하게 작동하는 기계는 인간에게 경이로움을 주기 위해서 작동하지 않는다. 실수를 가장한 예술이 가장 예술스럽고, 사람 같이 않은 것이 제일 사람 같아보이는 법. 그러기에 난 사람 냄새 안나는 작품이 보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jcV6ctL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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