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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박경락에 대하여 2 / 공공의 적1

과거 스타크래프트1 인물 리뷰

by @blog 2019. 12. 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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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스타1 팬들에게 이리저리 까이는 강도경. (후에 강도경 인성에 대한 오해를 풀어 보겠다. 확실한 건 강도경은 인터넷 떠도는 말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현진과 더불어 선수, 코치, 감독이 된 몇 안되는 케이스로 대기업 KT롤스터 스타크래프트팀의 마지막 감독이자 좋은 성적을 낸 이력이 있었다. 물론 감독 때도 좋았지만 선수시절 커리어도 무시할 수 없는데 1.5세대 대표 프로게이머이자 최초 저그로 우승한 선수가 바로 강도경이라는 것이다. 

 

 

 

(그런건 됬고 내 기억 속 강도경은 HOT처럼 5대 5가르마하고 아이디도 에쵸티포에버라는 것만 기억난다)

 

 

 

 

 

출처 / 강도경 - 위키백과 

 

  수많은 대회에 우승한 덕에 그에게 "저그 대마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되고 송호창 감독같은 화끈한 성격과 리더십 때문에 한빛 스타즈의 주장이 된다. 그리고 2002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영향력 있었던 게임TV의 GHEM TV 스타리그 시즌2때 결승전에 진출한다. 그리고 강도경과 더불어 많은 대회를 휩쓸어 다녔고 천재테란이라 불리던 이윤열을 8강에 꺾고 올라온 선수가 있었는데 그는 강도경과 같은 저그, 특히 테란에게 강한 선수

 

 

 

한빛스타즈에 새로 입단한 신인선수 박경락이였다. 

 

 

 

 

 

 

  박경락이 스타1 은퇴까지 있었던 팀은 한빛스타즈였다. 한빛스타즈는 이재균 감독이 부산에서 강도경과 김동수와 함께 꾸린 SM(Starcraft mania)팀이 한빛 소프트의 스폰을 받아 탄생된 팀이였다. 그때 당시 스타크래프트 게임단은 있어도 스폰을 받는 팀이 거의 없었는데 한빛스타즈는 2001년 탄생된 KT매직엔스에 이어 꽤나빠른 시기에 탄생됬다. 특히 한빛 소프트가 스타크래프트팀 창단에 긍정적이였을 거라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한빛 소프트의 밥줄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빛소프트는 어마어마한 게임 유통사였다. 그곳에서 유통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1과 확장팩, 디아블로2와 확장팩, 거기다가 워크래프트3 오리지날까지. 그때는 블리자드 코리아가 없었기에 블리자드 게임을 유통, PC방 붐과 더불어 블리자드 게임이 대흥행하자 한빛소프트도 커져갔다. 한빛소프트는 게임단 창단을 빠른 시일에 했지만 후에 선수들의 인터뷰나 소속팀 연봉표를 보면 지원이 좋지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금전적 이유 때문에 타 팀에 선수들을 이적시키는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했다. 지원은 열악했지만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던 팀. 그런 팀이 있었던 건 이재균 감독의 뛰어난 안목 덕분이겠지. 그리고 이재균 감독은 세명의 프로토스, 테란, 저그 선수를 영입하는데 프로토스는 박정석을, 그리고 배틀넷에서 게임을 보고 두 명의 플레이어에게 마음이 갔는데 그게 바로 저그 박경락과 테란 변길섭이였던 것이다. 당시 박경락은 KT인터내셔널 챔피언쉽 대회 8강전에서 프로였던 박정석을 이겼고 이재균 감독은 그의 리플레이를 보고 영입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박경락은 자퇴까지하며 게임에 집중한 때라 이재균 감독의 제안을 누구보다 반겼는지도 모른다. 

 

 

 

“공부는 못했지만 게임에선 1등 할래요.”

  그 어느 해보다 신예 프로게이머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지난해, 박경락(20ㆍ사진)은 이윤열에 이어 승률 2위를 기록하며 데뷔 첫해를 화려하게 시작했다. 온게임넷스타리그, KPGA리그 등 방송사들의 빅리그에서도 임요환 등 강자를 줄줄이 꺾으며 4강까지 진출했다. 러나 박경락의 성공 뒤에는 부모의 반대를 뒤로 하고 고등학교를 그만 둔 후 전국의 PC방을 전전했던 과거가 있다.

어려서부터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관심 분야는 오로지 게임뿐이었던 그는 고등학생이 된 후 ‘스타크래프트’에 빠지기 시작했다. 밤을 새고 게임을 하다보니 지각은 일쑤였고 무단결석까지 하며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부모는 외동아들이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게임으로 성공하겠다며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어머니께 조금씩 받은 용돈으로는 PC방 비용을 댈 수 없어 공짜로 게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 이를 악물고 게임에만 몰두한 그는 결국 지난해 4월 한빛스타즈 소속 프로게이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의 비법] 박경락 (1*

 

 

 

Q.그간 많은 세월이 지나 이재균 감독님을 잘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1999년 SM팀을 만들게 되었던 일화를 말해주실 수 있나요?

간략하게 말씀 드리면,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 모인 스타크래프트 친목 모임에서 다른 선수들과 겨뤄보고 싶다는 취지하에 팀이 결성 되었습니다. 창단 맴버는 강도경(현 KT코치), 김동수 (현 에일리언웨어 감독)등이 주축 맴버였구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서 정식으로 활동을 하게 된 해가 99년도 였습니다.

- 생략 

 

Q. 기록상에는 2001년 5월에 정식으로 한빛 스타즈의 창단이 있었습니다. 이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나요?

당시에는 IT, 닷컴 버블이 일어나던 시절이라 제안서를 들고 테헤란로를 두 달 내내 누비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제안서를 들고 다니면서 여러명의 좋은 분들을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 임태주(전 스포츠조선 기자) 형이 한빛소프트에 추천을 해줘서 제안서를 들고 들어가서 직접 브리핑을 하고 마침내 창단이 이뤄졌습니다.

당시 지인들이 추천 한 곳은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대부분 거의 단기로만 계약을 하자고 해서 저는 가급적 오래 갈 수 있는 곳을 원했죠. 한빛소프트 회장님과의 면담에서 '향후 성적이 좋으면 꾸준하게 지원하겠다'라는 답변을 듣고 바로 선수들과 입단 계약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Q. 당시 한빛 스타즈가 배출한 선수들을 보면 굉장합니다. 강도경, 김동수, 박정석, 나도현, 박경락, 변길섭 등의 스타를 배출했는데 이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 생략

박경락 , 변길섭 선수의 경우 선수들의 플레이를 배틀넷에서 유심히 본 결과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되어 직접 만나서 팀으로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나도현 선수의 경우 예전부터 탐내던 선수였어요. 원래 소속은 kor(온게임넷)팀 소속이어서 당시 저희 팀에서 생활하던 차재욱 선수와 맞트레이드를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도현, 차재욱 선수가 나중에는 그 팀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서 흐믓했던 생각이 납니다.

 

[인터뷰] 이재균 감독, "내보낸 선수 보충해 프로리그 출전하겠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 다할 것" (1

 

 

 

  이재균 감독의 안목은 정확했다. 박정석은 2002 스카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을 이기며 우승자가 되었고, 박경락과 같이 입단한 변길섭은 2002 NATE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주장 강도경을 이기며 역시 우승자가 된다.(하지만 2002 월드컵 경기와 스타리그 결승전 경기가 겹치는 바람에 경기장이 텅텅비었다고. 투명 우승자) 그리고 박경락 역시 2002년 스타대회 종합랭킹 2위를 차지하고 2002 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국가대항 단체전에 승리해 금메달을 딴 그야말로 대박 신인이였다. 

 

 

  올해 선수들의 활약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2002년 종합승률 랭킹을 살펴보면, 메이저 대회인 KPGA 3차리그, SKY 2002온게임넷 스타리그, 제2회 겜티브이 스타리그에서 각각 1위를 하고 있는 박경락, 임요환, 베르트랑 선수와 한웅렬, 홍진호 선수의 상승세를 살펴볼 수 있는데, 현재 종합승률에서는 57승 18패의 이윤열 선수가 1위를, 53승 20패의 박경락 선수가 2위를 달리고 있으며, 부활한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는 2002 승률 랭킹에서도 32승 14패로 3위를 달리고 있다.

[뉴스] 9월 프로게이머 순위 "임요환 1위" (2

 

 

한국은 3일 폐막된 월드사이버게임즈2002(WCG2002)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해 금메달 3개를 획득한 러시아를 누르고 종합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은 전통적인 강세종목인 `스타크래프트'에서 지난 대회 우승자인 임요환 선수가 홍진호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피파2002' 종목에서 황상우 선수가 지난대회 우승자 김두형 선수를 이겨 한국선수끼리 금, 은메달을 나눠가졌다.

또 국가대항 단체전 스타크래프트 종목에 출전한 한웅렬, 박경락 선수도 카자흐스탄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게임올핌픽서 대회 2연패(1보) (3

 

 

 

 

  입단한지도 얼마안됬고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니 기대하기 마련. 이재균 감독은 다음 우승자가 박경락이 아닌가 기대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경락은 스타리그 첫 데뷔전인 GhemTV 스타리그 시즌2에서 준우승까지 가게된다.

 

 

2001스카이배부터 우리팀은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동수,도경,길섭, 정석이 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순간들이였다.

팀내 게이머들이 돌아가면서 우승 한번씩 해보는것..

이번엔 경락이 차례인가?

- 생략

한 예로.. 동수가 우승 하면서 일구어낸 여러가지 파급효과가

길섭 도경 정석에게까지 전달된것이라고 생각된다.

정석이 의 우승은 정말 눈물 겨웠다. 힘들다는 종족으로

재경기를 거듭하메.. 결국 윗 선배들이 겪어온길을 정석이도 똑같이 겪어온것이다.

지금은 경락이가 그 단계 까지 왔다.

경락이도.. 예전 선배들이 겪어온 시련..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의 마인드 라면 경락이가 우승 못할 이유가 없다.

힘내자.. 우리는 해낼수있다.

2003년을 다시 한번 우리의 해로 만드는날까지 .......

 

 무엇이 그들을 강하게 하는가.. (4

 

 

 

 

경락아 비스폰팀부터 형이였다ㅋㅋㅋ

 

  강도경과의 결승전, 처음 출전한 스타리그에 준우승까지 간 것도 대단한데 당시 기세가 좋은 강도경과 2대2로 팽팽하게 경기를 한다. 그러다 마지막 세트에 패배, 결국 박경락은 준우승을 하고 박경락 커리어에 있어 가장 좋은 시기인 '첫 스타리그' GHEM TV 시즌2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게릴라 드랍을 한다는 뜻의 '경락마사지'와 조지명식때 서로 지목하지 않으려고 했던 '공공의 적'이라는 별명이 퍼지고 인지도를 쌓았던 때는 2003년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때였다. 

 

 

 

 

 

  박경락의 8강 상대는 다승왕이고 승률도 좋고 거기다가 인기도 하늘을 찌르며 프로게이머 최초 억대 연봉을 받은 임요환이였다. 임요환은 1승 1패, 박경락도 1승 1패, 이경기에서 지면 8강에 탈락하는 상황이였다.

 

 

 

   임요환이 다승왕이였다면 박경락은 승률면에서 1위였다. 임요환과 비교하면 승리횟수도 절반이고 경험도 적지만 박경락은 테란전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맵은 개마고원이고 테란 선수들의 성적이 좋은 맵

 

 

 

한빛스타즈 창립멤버였던 김동수가 지켜보는 경기는 그렇게 시작됬다

 

 

 

 

 

 

 

  승자예상에서도 임요환이 73% 앞서 있었다. 그만큼 2003년 때 임요환은 이윤열과 더불어 성적이 좋았던 시기고 우승경력도 많았으며, 더불어 테란, 당시 많은 저그 선수들이 테란 선수들로 인해 준우승을 한터라 테란은 저그에게 약하다는 인식과 실제로 상성에 있어 저그는 테란에게 약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임요환은 치즈러쉬를 시도. 치즈러쉬라고하면 다수의 SCV로 소수의 마린을 보호하며 공격하는 전략이다.(미네랄이 조금 더 있으면 벙커링하기 아주 좋다) 다만 치즈러쉬에 실패하면 프로라도 승패가 기울기 때문에 도박적인 전략 중 하나였다. 해설진은 박경락과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할꺼란 판단하게 임요환이 이런 전략을 펼친거라고 이야기한다. 

 

 

 

치즈 러쉬 실패

(하마터면 벙커링 당할뻔)

 

  임요환은 다급해진다. 박경락의 좋은 대처 덕분에 실패하고 후에 다수의 마린을 이끌고 다시 공격, 또 한번 실패한다.

 

 

 

 

  그러나 박경락의 진가가 나타나는 순간은 바로 이때이다. 수송업을 마친 오버로드로 임요환의 본진 아래쪽에 러커를 배치시킨다. 임요환이 아래쪽 러커에 신경쓰는 동안

 

 

사실 박경락의 진짜 카운터는 바로 위쪽 입구에 들어온 러커인 것이다. 

 

 

  러커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이미 병력과 미네랄 수는 차이가 났고 더불어 한번 더 임요환의 주요 병력이 입구를 지키는 동안, 위에서 돌아온 오버로드로 게릴라 드랍을 해 본진에 피해를 준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 그렇게 힘도 못쓰고 GG를 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박경락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기이자 여기저기 파고드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경기, 이에 옵저버는 박경락의 이렇게 동시다발적인 드랍 전술에 옵저빙이 힘들다고 할 정도다. 

 

 

  옵서버맨은 독립부스에 앉아서 혼자 일하지만 중계진 멘트와 담당 PD의 사인, 현장 팬들의 환호성이 동시에 들리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김씨는 중계하기 가장 힘든 선수로 전성기의 박경락을 꼽았다. 동시다발적으로 드랍을 하다보니 어디를 비춰야할지 우왕좌왕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엔 신인선수들이 나와 엉뚱한 전략을 선보일 때 가끔 당황한다고.

[피플]한국에만 있는 케이블TV 이색직업(5

 

 

더불어 2003년, 그는 테란에게든 프로토스에게든 좋은 모습을 보였다

 

 


대 테란전의 경우 ‘공공의적’ ‘테란킬러’ 박경락이 78전49승29패(66.7%)를 기록하며 최고수를 차지했다.

대 프로토스전의 경우 최고수는 ‘저그마왕’ 강도경으로 33전25승8패(75.8%)라는 높은 승률을 나타냈다. 2위는 29전21승8패(72.4%)의 박경락,3위는 25전18승7패(72%)의 박신영으로 집계됐다.

[강도경/박경락] 저그 최고수는?(08/01) (6

 

 

 

 

  테란에게도 프로토스에게도 모두 강한 저그. 테란의 황제인 임요환을 누른 저그 선수. 많은 저그플레이어들은 박경락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이재균 감독의 말처럼 홍진호와 강도경과 더불어 저그 우승자이자 한빛 에이스로 나아갈 가능성이 큰 선수였다. 이에 박경락은 우승자였던 조용호, 홍진호와 함께 조진락 라인에 속하며 2003년 기세좋은 저그선수 중 한명이 되었다. 물론 테란전과 프로토스 전에 비교하면 저그전은 평균 성적을 냈지만 2002 Ghem TV 시즌2때 우승자 강도경을 상대로 팽팽하게 경기했기에 아직 저그전에 완전히 약한 선수라고 단정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박경락은 임요환을 누르고 4강에서 같은 조진락 라인인 조용호를 만난다. 

 

 

 

 

 

 

 

 

 

 

출처

1)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65050&iskin=esports

1*) https://news.joins.com/article/1971642

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0200649+

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265742

4) http://cafe.daum.net/hanbitdream/877k/29

5) https://news.v.daum.net/v/20051222153411299

6) http://cafe.daum.net/fanNo1/F2y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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