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포티 감성이란 무엇인가 (이대희 감독론)

본문


 

 
 


 
  몽실언니급 어린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준 작품 애니메이션 영화 <파닥파닥>에 대해 아는 사람 있는가? 포스터만 봐서는 디즈니의 <니모를 찾아서>처럼 생겼지만 그 안에 담긴 오묘함이란... 뭐 연령 제한이 15세라면 몰라. 그런데 12세 이용가였기에 뭣도 모르고 보다가 파닥파닥 낚여서 어른들의 세계에 일찍 들어가 아이들이 있다 카더라. 그런 이대희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만 6년, 제작기간 3년 공들여 만든 애니메이션 <미스터 로봇>이 25년 4월에 개봉했는데 포스터가 인상적인 거 있지? 봐라. 여자아이가 투박한 로봇 위에 서서 마치 로봇의 주인인 것처럼 매서운 눈매를 뿜어내는 모습을. 왜? 로봇 주인이 여자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어?



  여자 아이도 사람이야 사람. 수많은 매체 속에 항상 수동적이고 보호 받아야하는 존재, 지켜줘야하는 존재로만 표현됐지만 초등학교 다닐때를 돌이켜보면 여자 아이들은 항상 욕망이 있었고 욕심이 있으며, 하고 싶은게 많아보였다. 공주님 같아 보이는 외형과 상반되게 단단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 만든 투박한 디자인의 로봇, 무엇보다 강하게, 무엇보다 단단하게 디자인한 자신만의 로봇. 자신이 직접 조립하고 집적 조종하며, 그러한 로봇을 통해 자신의 단단한 의지를 지켜 나가는 여자아이의 모습. 그리고 로봇의 중앙 코어에 내제된 아버지의 부성애가 발동되면서 딸의 위기의 순간 때 과학적 법칙을 거스르며 움직이는데. 진짜 배드애스해보이지 않음? 그야말로 또봇 여자버전, 한국에서 결코 나온 적이 없는 터프하게 로봇을 조종하는 여자아이 이야기라니. 해러웨이가 말한 사이보그 선언문 속 성별과 신체의 한계을 극복하고 자신의 주관을 관철한 여성을 보여주는 건가 싶었지 뭐야. 하지만 실제 애니메이션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내용은 원빈이 나왔던 영화 아저씨 sf 애니메이션 버전이었고 주인공으로 보였던 여자아이는 사실 딸바보가 되고 싶은 남자에게 필수적인 요소, 귀엽지만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여자 아이였다. 물론 그녀가 완전 수동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발칙한 면도 있었고 기발한 면도 보여줬으니깐. 하지만 빌런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성인 남성의 영혼이 깃든 로봇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 그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존재라는 큰틀은 변함 없었다는 거. 주인공이 아니고 도구였던거니? 맥스의 부성애와 아가페적인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도구였어? 레옹, 아저씨, 나의 아저씨의 클리셰를 따라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면서 느낀점, 이게 바로 영포티 감성이라는 건가?



  사실 이대희 감독 특유의 영포티스러움은 이 영화에만 국한된게 아니다. 그의 대표작 파닥파닥 역시 잘 보면 치기어린 고등어와 그에 상반되게 현실을 잘 아는 꼰대 늙은 넙치가 등장하는데, 알고보니 칙칙한 소리만 하던 늙은 넙치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거임! 파닥파닥이는 회쳐서 뒤져버렸던 거임! 물론 감독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발전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만, 만약 그랬다면 올드넙치의 죽음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한 주인공격인 파닥파닥의 탈출을 그리는 게 맞는데 왜 반대인 건가요. 그건 마치 원피스에서 루피가 뒤지고 오로성 원로들이 루피의 혈기왕성함에 깨달음을 얻은 후 "이게 자유구나..."그러는 것과 같은 상황인 거다. 물론 고등어를 2030대, 늙은 넙치를 기혼 중년남성으로만 보는 건 나의 너무 비약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다음 작품에서도, 그 다음 다음 작품에서도 패기 넘치고 정의로운 남자 아이나 젊은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중년 아버지가 주인공이고 부성애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단순 비약된 해석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즉 영포티의 마음에만 집중하고 있단 말이다.



  그렇다면 영포티 감성이란 무엇인가. 다양성 부족이다. 다른 나이대와 성별이 가지고 있을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피상적인 시선이자, 자신의 나이대를 높여 세우는 마음을 뜻한다. 오징어게임3를 두고 한창 사람들이 황동혁 감독을 두고 영포티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캐릭터성이 문제였던 거다. <뒤가 없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더라.>편에서 말했지만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 2,3는 영포티스러움이 터지다 못해 너무 강하게 나타나서 보기 거북할 정도다. 도덕적 해이로 나쁘게 표현된 2030대 남성 뿐만이 아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모성애적인 모습과 막연한 피해자인 2030대 여성에 대한 영포티의 시선 역시 불쾌하다. 오징어 게임이라며. 돈에 목숨을 건 사람들만이 참가하는 게임이라며. 젊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돈을 향한 욕망의 모습은 단 하나도 엿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가족을 지키겠다는 이상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이상한 여자들만 있으면 뭐 어떻게 하라고. 오직 영포티의 도움이 필요한 여자 말이지.
 

 

  뭐 나쁘게 나오는 것보다 착하게 나오는게 더 좋지 않음? 여자가 착한 약자로 나오는 게 뭐가 문제임? 라고 하지만 이는 영포티를 부각시켜주는 도구일뿐 그 안에 내제된 탐구심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오징어게임3에서 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30분만에 아이를 낳은 산모처럼 탐구심이 전혀 없다는 거다. <미스터 로봇>에서 나나의 "일어나!" 대사에서 영화 <클레멘타인>을 떠올렸다는 사람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지. 물론 피상적인 표현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상적인 이미지를 너머 너무 엇나가면 관객에게 혼란을 줄 위험도 크고, 또한 타인이 만든 피상적인 이미지에 오히려 흠뻑 취한 나르시스트도 있을테고. 하지만 단순 상업성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좋아라하는 내게 있어서는 피상적인 캐릭터는 죄악이고, 특정 성별과 나이대의 막연한 찬사는 없어야 한다. 자고로 사람이란 욕망에 사로잡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또 정의로워지다가도 또다시 이기적으로 돌변하는 것, 성기훈처럼 아기를 위한 고결한 희생은 영포티의 상상 속에서나 있는 법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