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적임, 처음에는 물과 기름이 섞이는 척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에는 극단적으로 나뉘게 되고 계속 섞는 힘을 가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끼리끼리 엮이게 된다. 이는 물과 기름은 속성이 아예 달라서 그러는데 나는 이것을 두고 아이돌판이 생각나더라. 물 = 라이트팬 / 기름 = 코어팬. 그래도 한 때 한 아이돌 멤버의 팬도 해보고 라이브도 봤는데 나는 안되겠더라... 그 세계관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겠더라... 그러니깐 사적으로 친해질 수 없는데 자꾸만 사적인 관계에서나 필요한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는 아이돌, 그런데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코어팬의 조합으로 심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너무 위험하고, 또 그러한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는게 괴씸하기까지 했다. 너무도 깊은 애정을 못느끼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그래 맞다. 나는 분명 ‘대처’라고 말했다. 사랑이 무조건 옳고 좋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애정 산업인 엔터테이먼트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지켜야 하거든.
그전에 아이돌판이 얼마나 소수정예를 양산하기 쉽고 또 얼마나 폐쇄적인지 알아보자. 나도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는 알지는 못하지만 대략적인 분위기가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 아이돌판에는 팬사인회 문화가 있는데 나는 이게 무슨 음악 가게에서 앨범을 살 때 아이돌이 직접 사인해주는 거로 생각했거든? 그것도 아니면 공짜로 팬사인회를 열어서 팬들이 사인받고 그러고 끝나는 줄 알았음. 그런데 진짜 중의 진짜만 남은 아이돌판답게 앨범을 얼마나 많이 사느냐에 따라(줄세우기) 또는 추첨제를 통해서 팬사인회를 연다는 사실. 그래. 그렇다면 뭐 앨범 3 - 5장 사면 당첨 되는 건가? 아니다. 무려 몇백만원을 주고 앨범을 사야지 몇 분 얼굴 보는게 가능하다는 후기 글이 수두룩하다. 어디 팬사인회 뿐일까. 아까말한 몇백은 투자해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이벤트도 있고, 옛날에는 연예인과 공짜로 소통할 수 있었던 팬카페가 사라지고 소속사에서 아예 플랫폼을 하나 만들어 소통하고 싶으면 돈내라고 하더라... 이제 응원봉도 소속사가 만들어서 판다고? 응원구호는 소속사가 안만듬? 그야말로 아이돌이 있는 모든 길에는 돈이라는 제약이 걸려 있다.
돈지랄 났냐고요? 어디 돈지랄 뿐일까. 시간 지랄, 에너지 지랄도 볼 수 있다. 스밍(스트리밍)이라고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 순위를 올려주기 위해 일부러 노래를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을 뜻하는데, 물론 노래가 좋아 몇번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지만 문제는 오직 순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노래는 듣지 않고 그냥 노래만 재생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행동에 자부심과 함께 뿌듯해하는 사람들, 우리 아이돌과 함께 으쌰으쌰 순위 올려보자는 아이돌 마스터 현실판 하는 사람들, 이 아이돌이 좀 더 메이저로 가면 감격하다 못해 아들 잘 키운 어미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있겠지. 그리고 그러한 감정 포인트를 가진 사람만이 아이돌판에 진을 치고 그들의 문화와 생각들이 당연하게 자리잡히는데 그들이 바로 코어팬, 기괴하게 변해버린 아이돌판을 이끄는 주인공이자 이상한 포인트에 책임감을 느끼는 팬들이다.
문제는 코어팬들은 자신이 코어팬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기준이 팬의 기본 덕목이라는 생각에 라이트팬의 행동을 충성심 부족으로 취급하여 머물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여초 특유의 폐쇄성과 모성애와 자본주의가 끈적하게 뒤섞인 그 판에서는 조울증 비슷한 감정들이 하루종일 터져나오는데, 눈물 흘리며 탈덕문을 쓰는 사람, 집착광공처럼 인스타그램 사진 하나하나에 숨은 의미를 찾은 사람, 투자한 비용을 보상받기 위해 아이돌과 팬의 관계성을 확인하는 사람, 팬심이라는 이유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 한 공간에 뒤섞여 있다. 그러한 공간에서 평온이라는 감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열애설의 예를 들어도 뭐 아쉬우면 팬 그만하는 게 자유잖아. 그러나 코어팬은 매우 사적인 관계에서나 필요로 하는 지속성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떠나는 팬을 "유사 연애"하는 팬들이라며 오히려 비꼬아서 공격한다. 허나 열애설에 마음을 돌린 팬을 "유사 연애"라고 공격하는 그들이야말로 아이돌에게 투자한 비용과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 그 관계의 지속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어떤 방책인데, 아니 아이돌이 그쪽 아프면 병문안이라도 옴? 어차피 사적인 관계도 아닌데 왜 계속해서 사적 관계에서나 필요한 지속성을 당연하게 요구하는걸까?
아이돌을 향한 충성도를 보상 받아야한다는 집착은 공격성으로도 표출된다. 초등학생 유튜버 <간니닌니 다이어리>가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당첨 됐는데 방탄소년단 팬들이 그녀를 악플로 싸잡아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지. 이유가 뭐냐고? 나도 몰라. 방탄소년단팬에게 필요한 ‘기본 덕목’과 ‘오래된 충성심’, 즉 코어팬스러움을 그녀가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해서겠지. 그래서 초등학생에게 응원법 아냐고, 아미봉있냐고, 머글이냐고 공격하며 그냥 연예인 콘서트 구경해보고 싶다는 사람을 사정없이 때려잡았다. 그 후 역풍이 지나간 후 현자타임이 왔는지 나 방탄소년단 팬인 내가 대신해서 사과하겠다는 팬들이 속출했지만 공격할때는 가만히 있다가 콘서트를 다 취소하고 나서 사과하면 무슨 소용인가요? 또 자기들끼리 생각있는 팬들이라 자부심 느끼고, 또 사과 정신에 감동했는지 추천수 박고 있다. 그러나 또다시 타투이스트 안리나에게 똑같은 악플테러에, 똑같은 사과하는 일이 발생하자 역시 아이돌 팬들은 대부분 코어팬이 확실하다.
이들의 극성스러움은 일반인에게 한정되지 않고 소속사에게까지 확장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돌판에서는 아이돌이 소속된 소속사를 욕하는 분위기를 당연시 여기더라. 왜 우리 아이돌 조금 더 정성스럽게 대해주지 않냐고, 정신적인 고통 호소하는게 딱 보이지 않냐고, 케어 좀 하라고, 화보도 찍어 달라고 강성 요구를 자주한다는 거다. 근조화환부터 해서 트럭총공까지 아이돌을 착취하는 소속사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거기다 비싼 굿즈, 감히 자신들의 빠심을 돈벌이로 이용해먹냐는 반발심도 포함된다. 그런데... 소속사가 그 가격을 매겨도 살 사람이 널려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매긴다는 생각은 안함? 아이돌이 소속사고 소속사가 즉 아이돌이다. 계약기간 만료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치는 아이돌들은 그렇게 많지도 않다. 대표적으로 방탄소년단의 제계약건에 있어서 가장 놀란것은 다름 아닌 방탄소년단의 팬들인데 하이브의 탐욕에 온갖 신체적 정신적 착취를 당한다 생각했는데 으잇? 어째서 다시 제계약인건데욧! 뭐긴 뭐야. 팬들의 관계만큼 소속사의 관계 역시 끈끈하다 못해 더욱 사적이니깐.
이러한 분위기 속에 살판 난 것은 오히려 아이돌인데, 일반인의 해택과 아이돌의 해택 모두 원하는 뻔뻔한 아이돌도 등장해서는 인파들 사이를 버젓이 다니며 좋아 죽으려는 팬에게 불쾌한 눈살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아이돌님 사적인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방위대 문화까지 등장하며 “평소에는 모른척해주다가 무대위에 소속사 스케줄 있을 때만 환호해주기 ^^“라는 기이한 문화를 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해? "오 연예인이다! 사인 좀 부탁해요!"라는 사소한 부탁이 엄청난 민폐가 되어버린 문화를 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냐고. 그러면서 또 뭔 라이브 하면 "나도 사람이에요 사람. 외로움을 느낀다고요."라면서 사적인 감정을 내비치며 사적인 관계에서나 필요로 하는 조건없는 사랑을 요구하면 또 그걸 받아 들어야 해? 내가 기분이 내킬때는 가까워져야하고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눈치보고 알아서 떠나라, 팬하기 참 힘들다 힘들어. 사랑이란 상대방이 눈치를 보게 만들면 안되고 노예로 만들어서는 더욱 안되는데 그쪽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나요?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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