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 아이돌판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한번 2D 덕질판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2D는 괜찮지 않냐고? 왜냐면 무한으로 복사 붙여넣기가 가능해서 보급품마냥 자기 옆에 하나씩 끼면 되니깐 말이지. 그런데... 그게 또 아니더라고... 아이돌판 못지않게 치열하면 치열하더라고. 여자는 성욕, 즉 리비도의 승화에 있어서 서툴고 이것을 발화하기 쉬운 형태인 '견제'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견제하고 싸우며, 또 상대방의 행동을 견제로 파악하면서 무한의 견제 굴레에 들어가기 쉽거든. 발화되기 쉬운 감정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여자들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인 걸까?
그전에 우선 2D 덕질판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 해보겠다. 보통 우리가 아는 애니메이션이나 창작물들, 예를 들어 진격의 거인이나 주술회전 같은 작품들은 1차 창작물인데 그러면 2차 창작물은 무엇이냐, 그 1차 캐릭터를 두고 자기 마음대로 이리바꿔보고, 저리바꿔보고, 커플 만들어 먹고, 자기가 만든 가상의 캐릭터와 커플 시키는 것을 뜻한다. 즉 2D 캐릭터를 팬질하다는 것은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특정 캐릭터의 관계를 증폭시키고 비중을 증폭시키는 것, 즉 관계의 재해석을 뜻한다.
그러면 이제 좀 더 전문적인 용어도 설명해 봐? CP, 즉 커플링이라고 해서 1차 창작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커플로 엮는 걸 뜻하는데 이 CP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매우 다양하고 동성, 이성, 그 모든 것을 가리지를 않는다. 그러면 드림은 무엇이냐, 가상의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덕질을 하는거다. 드림캐라고 해서 1차 창작물에 등장하는 캐릭터, 그리고 드림주라고 해서 자신이 만든 가상의 캐릭터를 엮는 것을 드림커플이라고 한다. 거기에 커미션이라고 해서 이러한 2차 창작 커플을 주제로 그림과 소설과 감상커미션이라고 해서 2차 창작물을 감상하고 후기를 적어주는 것도 있다지. 어때? 뭐가 많지? 덕질의 종류가 많은 만큼 재해석의 영역도 넓고 마치 인터넷 세계처럼 풍부한 자료에 향유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여초 특유의 안좋은 현상, 편가르기와 이상한 정치 싸움 및 로컬룰이 2D 판에서도 발휘되면서 덕질판은 우리가 아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 기괴함의 끝을 나는 겹드림 금지라고 꼽고 싶은데 제작자가 모두 즐기라고 만들어 놓은 창작물을 자기가 만든 가상인물을 넣어 오직 자기만이 관계할 수 있다면서, 만약 내 말에 동의 하지 않으면 나를 견제하는 거고 나를 지우기 하는거라면서 불쾌해하고 있다. 아까 말한 커미션 있지? 그런데 커미션이라는게 그렇게 저렴한 것도 아니고 최소 몇만원, 전신컷은 십만원 단위까지하지만 그들이 커미션을 신청하는 이유, 내가 만든 드림커플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겠지. 지금 한번 구글 검색창에 "겹드림 금지"라고 검색해보세요. 핑크 머리에 핑크 눈을 가진 캐릭터가 왠 남자캐릭터 하나 안고 있을 거에요. 그런데 그 남자캐릭터 어딘가 익숙하네? 우리가 흔히 아는 1차 창작물에서 나오는 캐릭터인데 만약 나 역시 그 남자 캐릭터와 드림 커플을 한다... 그 사람과 당신은 그 순간부터 서로 모른척 해야하는 강적임! 그런데 만약 나의 존재를 무시하고 너의 드림 커플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너 그거 내 드림 커플 "지우기"하는 거야!" 아니 무슨 지우개도 아니고 지우기래. 그러면 내가 진화론을 지지하면 난 창조론 지우기 하는 거임? 거기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야 말로 다른 드림 커플 지우기 하고 있는 거 아님?

정신차려. 너희 오빠 폴리곤 아트, 언제든지 복사 붙어넣기 가능한 데이터 집합이야,라고 암만 말해도 소용없다. 그들에게 있어 이미 그 캐릭터는 진짜 사람이고 진짜 사람 그 이상이다. 특히 2차 창작팬들끼리 자신의 영역을 증폭시킬수록 그에 대한 충성심과 힘은 강해진다. 실제 옆에는 없는데 있는척 해야하는 버츄얼 아이돌 플레이브 세계관에 동의 못했던 김신영을 욕했던 플레이브 팬처럼, 빅뱅우주론이며 진화론이 나와도 성경 속 세계관을 들먹이는 기독교 신도들처럼 언제든지 자신의 해석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다른 해석을 내놓아도 아까 말한 "지우기"라면서 하나의 수동 공격으로 제멋대로 판단하고 그로인해 나는 너를 공격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독재국가와 종교단체에서는 이런 방식을 많이 선호하는데 어떤 해석을 하던지 간에 독재자의 위대함과 연관시켜야하고 어떤 해석을 하던지 간에 신의 위대함과 연관시켜야 한다. 아니요, 저는 다르게 해석하고 싶은데요? 독재자와 신을 공격한 것이 아닌 다른 해석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부터 그는 감히 국가를 상대로 견제하는 것으로 취급되면서 처형된다. 스피노자가 그랬거든. 그는 "신이 즉 자연이다"라는 범신론 사상을 냈지만 한 광신도의 칼침에 죽을뻔한 사건이 있었다지. 스피노자가 교회로 달려가서 범신론 사상을 퍼트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 지도자를 공격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도 죽을 뻔한 것이다. 아마 스피노자에게 칼침을 찌를 뻔한 광신도가 그 심정을 현대식 말투로 말한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너가 지금 내 CP, 내 드림 세계관 지우기 하고 있잖아!"
현재 독재시대도 아니고 종교의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인터넷에 자리잡고서는 팬질이라는 이유로 재해석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원래 영화나 드라마의 해석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그 해석이 서로 싸우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해석을 통제한다면 그건 아까 말한 독재주의 국가나 다름없다. 너 그렇게 해석하는 거 불쾌해, 너 그렇게 해석하는 거 지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러한 해석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에 만약 누군가 내 해석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면 난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과거 진중권을 포함한 평론가들이 영화 디워에 대해서 자기만의 분석이자 비판을 했는데 대중들은 심영래 감독의 회심작을 두고 비판한 평론를 향해서 공격한 사건이 있다지. 평론가 놈들은 어려운 영화나 좋아한다고. 애국심도 없냐고. 심형래 감독님의 노고를 모르냐고.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진중권과 평론가를 욕하던 대중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결국 승리하는 사람은 해석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그럴시간에 팬아트나 하나 더 만들 것이지, 그러니깐 리비도를 단순 발화의 형태인 견제로 써버린다면 앞으로도 그 방식을 계속 쓸 것이고 당신은 날카로워진 정신으로 평생을 살텐데 괜찮아? 하지만 승화의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당신은 적어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텐데?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잃은 슬픔을 단순 발화의 형태인 슬픔의 감정으로만 썼다면 우린 신곡이라는 명작을 마주하지 못했겠지. 리비도를 발화하기 힘든 형태로 재창조하는 거, 이거 정말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거거든.
그나저나 그들은 왜 그런식으로 덕질하냐고요? 왜 살아있지도 않는 그들을 두고 그렇게 다투나요? 몰라요. 스피노자가 광신도의 칼침 때문에 찢어진 옷을 걸어두고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지 않다고 한 것처럼 나도 모르겠다고. 난 이러한 덕질 방식이 그냥 시간이 매우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더라. 시간이 많으니깐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으니깐 걱정이 많아지며, 걱정이 많으니깐 보호와 사랑을 받고 싶고, 그 애정이 어떤 집착이 되어 타인의 모든 해석과 자유를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 애정이 공포가 되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해석에 미리 겁을 먹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거지. 사실 다른 에세이에서도 썼다지만 전쟁이야말로 사랑의 동일어고 평화의 동일어는 무관심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 곁에 가까이 다가가지 마세요. (커플, 부부, 모자관계)
이것도 인간관계의 팁이라면 팁이겠지만 고속 버스를 타거나어떤 식당에 가서 밥먹을 때,뭔가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 장소에 머물 때기왕이면 커플, 부부, 엄마와 아들이 있는 사람 곁을 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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