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 저평가 된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2006년 작품 <아치와 씨팍>이 언급 될 때마다 난 뭐라 할말이 없더라. 내가 그 말에 속았거든. 진짜 저평가 된 보석같은 애니메이션인줄 알고 봤거든. 소재는 참신하고 좋아. 유치하긴 해도 평범한 것보다는 독특한 게 좋잖아. '엽기'가 주류던 시대에 나온 애니메이션답게 똥, 양아치, 독특한 인물 디자인, 그리고 그때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오인용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연예인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 욕 잘하는 캐릭터들 나쁘지 않아. 다만 서사 매니아인 내게 있어서 액션에 치중된 그 애니메이션은 지루하다 못해 중간에 졸면서 볼 정도였고, 거기다 고어... 물론 19금 애니메이션이라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했지만 이렇게 마이너스러운 요소가 많은데 대중성에서 과소평가 받았다고? 저평가 된 작품이라고? 그리고 나 한마디만 더 하자... 왜 아치와 씨팍 이야기는 안나오고 개코인지 뭔지만 주구장창 나오는 건가요? 으응? 재개봉하면 1000만은 우습게 찍는다는 댓글들이 있는데 난 그 1000만에 속해있지 않을거란 확신을 할 수 있다.
아치와 씨팍 외에도 마니아 층에게 저평가 받았다고 취급받는 영화가 있다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있겠지. 포스터만 봤을 때는 엽기 + 코믹 + SF인줄 알았는데 OCN에서 늦은 새벽 시간대에 본 그 영화는 내가 상상하던 내용이 아니더라. 약간 그... 한국 문학 같아. 약간 그... 이상문학상 수상작 느낌이 나. 신하균의 뛰어난 연기부터 충격적인 반전에 생각을 많이하게 해주는 영화임에는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포스터 때문에 크게 망했다, 그러니 재개봉한다면 성공할지 모른다는 말은 오버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인터넷에서는 대중성에 있어서 미온적인 결과를 받았지만 뚜렷한 강점이 있는 영화에 대해 재평가의 목소리가 크다. 매트릭스보다 먼저 “이 세계는 허상이다.”라는 주제를 담은 1998년작 <다크시티>, 어린시절 내가 펑펑 울면서 봤던 영화 <A.I>,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이노센스>는 맨날 시대를 앞선 명작이라는 소리가 나오더라고. 그리고 그 작품 하나에 꽂힌 팬들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명작이자 과소평가 받았다며 열띤 충성심을 보이지만, 그 충성심에 속았던 나는 다른 사람들을 또 속이려는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정말 과소평가 받은 작품 맞나요? 그러면 그때 당시 영화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최면에 빠진 것처럼 그 작품의 진가를 필사적으로 외면한 건가요?
마이너의 열띤 충성심, 이러한 현상은 힙합판에서 제일 많이 벌어지는데 자신이 꽂힌 래퍼에 대한 찬사와 대중성을 가진 래퍼들에게 그들은 진짜가 아니라고, 내가 소개하는 래퍼야말로 진짜 정통 힙합이라며 강하게 추켜세운다. 더 나아가 이것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서 과소평가 받았다며, 아니 너희들이 뭘 모른다면서 한번 맛보라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상하게 대중적이지 못한 작품의 충성심은 왜 그리 높은걸까? 그 이유는 강점과 약점을 고루고루 잘 조합한 작품, 즉 대중성 있는 작품보다 어느 강점 하나가 유독 강한 작품의 충성심이 높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아치와 시팍 역시 서사면에서 나를 잠자게 만들 정도로 루즈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스타일리쉬함과 액션신에 뻑이 가버린 사람이 그 작품을 과소평가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큰 것에 비해 그들의 머리수는 그리 많지 않으니... 요즘 애니메이션은 다 또봇 감성이라며 옛날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의 애니가 그립다고 하는 사람들, 그런데 막상 그들이 그런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 히트치게 만들 영향력이 강하지 않다. 특히 아치와 씨팍이 나왔던 2006년 당시 히트쳤던 애니메이션은 3D로 만든 전체이용가 애니메이션인 <아이스에이지>와 디즈니의 <카>이고 그것들이 주류, 대중에게 먹히는 이미지로 가는 동안 위의 말한 특유의 강점을 가진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충성심 높은 소수의 사람들의 취향만 저격하는 마이너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자신의 꽂힌 작품에 대해 열띤 충성심을 보이며 소리치는 사람들과 달리 소위 말하는 대세, 대중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아주 조용하다. 강점을 어떻게 적절하게 배합해야 좋겠냐는 질문에 대답도 안하고 또 그들은 조언해주지도 않는다. 마치 어떠한 경고도 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는 쓰나미처럼 그들은 소리없이, 그리고 조용히 물밑듯이 밀고 나간다. 대중에 맞춰 작업하면 안되냐고요? 그런데 사람이란 못되 쳐먹은 동물이라 자신에게 잘대해주면 매력없다고 함부로 대하는만큼 대중에게 맞춰준 작품 역시 너무 뻔하다며 기피한다. 박찬욱 감독이 심여를 기울여서 만든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 실패하게 되고 대중들에게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만든 <올드보이>가 오히려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을 보면 감이 잡히지? 알다가도 모르는게 사람 마음인데 그 사람의 집합체인 대중은 어떻겠는가. 더욱 변덕적이겠지.
그러면 그렇게 변덕스러운 사람의 심리를 어떻게 알아야 하나요? 어느 장단에 맞춰주고 어떻게 해야하나요? 어쩌긴. 그냥 찍어야지. 마치 주식같은 거다. 운이 좋으면 되는거고 운이 없으면 안되는 거고. 그리고 이번에도 대중은 아무 말도 하지않은채 좋아하고 또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싫어하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바다와 같은 사람들, 이런 이상 본인의 미학을 나침반 삼아 앞으로 나아갈수 밖에. 믿을 것은 오직 자신의 미감과 미학 뿐 그거 하나 믿고 나아가야 한다.
| AI 혐오와 장인 정신 (0) | 2025.12.15 |
|---|---|
| 왜 동덕여대 사태를 꾸역꾸역 여성혐오의 문제로 해석하는 걸까. (0) | 2025.12.12 |
| 왜 2D 캐릭터를 두고 사랑싸움 하는 거야 (0) | 2025.11.17 |
| 가난해야 세련되어진다 (DJ MAX BGA에 관해서) (0) | 2025.11.15 |
| 끝내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아이돌 문화 (0) | 202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