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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월급 루팡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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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경험 있지 않은가? 유독 내가 입사한 회사만 업계에서 최악이고, 유독 내가 맡은 업무만 그 회사에서 제일 힘든 업무라는 경험 말이지. 한두 번이라면 우연이라 생각하며 넘기지만 세 번 연속 그런 일을 당한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을 계속 당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면? 걱정하지 마라. 당신은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고 그 우연 역시 매우 정상적인 현상이니깐.

구직 사이트에 올라 온 수많은 일자리 중 평생직장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좋은 일 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없다. 당연히 구직 사이트에 활발하게 올라오는 자리는 퇴사율이 높은 기피 부서, 텃세가 심하고 상사가 이상한 사람이라 후임이 도망친 회사, 월급이 터무니없이 낮은 곳이라 신입사원들이 툭하면 나가는 문제 많은 자리일 확률이 높다. 반면 우리가 조금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했고 그런 자리는 구인 공고가 올라오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업무가 제일 중요하고 제일 힘들다고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자기가 있었던 부대가 제일 힘들다는 군인들의 말처럼 지극히 주관적이고, 막상 버틸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런 찡찡거림 대신 싸한 느낌을 직감하고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다.

슬픈 점이 있다면 그렇게 퇴사한 사람은 또 다른 회사에 입사하게 되더라도 그 회사에서 퇴사율이 가장 높은 자리에만 앉게 될테니... 그야말로 악순환이 반복이다.

 

 

그렇다고 구직자가 누가 봐도 편하고 월급 루팡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10시 넘어서 퇴근하는 최악의 자리에 적응해야만 해야만 하는 운명은 너무 가혹하잖아. 다행히도 구직자가 월급 루팡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긴 있다.

첫 번째, 분기별로 뽑는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취직하는 것인데 매번 힘든 자리만 비어있어 상시 채용하는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편한 보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서 역시 채용 기간에 맞춰 채용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그 경쟁률은 기피 부서에 비하면 매우 치열하겠지.

두 번째, 고통스러워도 무조건 버틴 후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것이다. 부하직원에게 존경? 배우고 싶은 선배님? 그딴 거 다 포기하고 월급 루팡이 되고 싶다면 교묘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업무를 부하직원에게 넘겨버려라.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회복무요원에게 분실물 업무를 맡긴 서울교통공사 직원 사건 아니겠는가. N번방 사건 이후 2020년에 사회복무요원이 승객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업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짬밥 드실 대로 드셨던 분들은 편하디편한 방법을 포기할 수 없어서 승객 분실물 관리 업무를 사회복무요원에게 맡겨버린 사건 말이다.(1 나 역시 맨날 자리를 비웠던 팀장의 업무를 대신했고 사장의 사적인 업무인 ‘오피스텔 입주자 관리’에 관한 서류까지 만들었으니, 직급이 높을수록 일을 떠넘길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하여 최대한 월급 루팡이 되도록 하자.

마지막 세 번째, 눈에 불을 켜서라도 월급 루팡이 다수 분포된 업종에 종사하는 것이다. 사회복무요원에게 분실문 관리 일을 맡겼던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해 많은 공기업 중에 상상 이상으로 월급 루팡들이 많으니 그런 직종을 찾아보면 좋다.

 

 

다만 월급 루팡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닌 월급 루팡도 월급 루팡 기질에 맞는 사람들만 버틸 수 있다. 예전에 난 월급 루팡이었던 적이 있고 하루 2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놀았을 정도로 일이 굉장히 널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월급 루팡이라는 것도 웬만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계속하기 힘들다. 지루하거든. 정말 미칠 듯이 재미없거든. 일이라도 바쁘면 시간이라도 빨리 가지만 월급 루팡은 하루 종일 웹툰 보고, 유튜브 보고, 시답잖은 연예인 뉴스 기사나 보다 보면 돈보다 더 귀한 나의 젊음을 쓰레기통에 산채로 버리는 느낌이라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라는 회의감도 들고 말이지. 그에 반해 회사 동기는 월급 루팡 생활에 아주 만족했으니,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것이 천직인 것 그 누구보다 즐기는 게 보였다.

분명 나 말고도 일을 하든 안 하든, 월급이 적든 많든, 일찍 퇴근하든 안 하든 회사안에만 있으면 그 모든 시간이 잿빛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월급 루팡은 커녕 회사의 그 모든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니, 참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직장인의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참고 자료

1) 윤다정 기자, 「사회복무요원에 개인정보 업무를?…서울교통공사,

전수조사 착수(종합)」, 『뉴스1』, 2023년 7월 10일, “https://www.news1.kr/articles/?510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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