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버맨 뿐만 아니라 단순한 8비트로 이루어진 게임들의 세계관이 은근 무섭더라고. 지금 퉁퉁퉁퉁퉁퉁 사후르를 아는 잼민이들은 NES 게임 벌룬 파이트(1985)를 모르겠지? 우정 파괴 게임으로 알려져 있고 남동생과 했을 때 실제로도 많이 싸웠지만 적의 풍선을 터트려 추락사 시키고, 강 사이에는 그들을 잡아먹을 괴물 고래가 있다는 세계관은 곱씹어 보니 무섭다. 생매장 시키고 생매장 당하는 게임 로드러너(1984)는 어떻고. 밀폐되어 있는 지하 공간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쫒아오는 미지의 존재들. 주인공의 능력은 오직 구덩이를 파는 능력인데 그것으로 적은 죽여도 적은 되살아난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는 능력으로 자신이 구덩이에 빠지다가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구멍으로 인해 가루가 되어버리니... 절규하면서 죽는 주인공 캐릭터의 모습과 이펙트 소리가 무서워서 혼자 있을 때는 절대 안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허드슨 소프트의 로드러너 전작격인 붐버맨(1985) 역시 무서운 게임이다. 뭔놈의 게임이 다 무섭냐고? 모르겠네... 그런데 붐버맨은 진짜 무서운게 맞긴 해. 붐버맨이 무서운 이유가 몬스터들의 예측 불가능한 패턴 때문이라는 거, 심지어 1탄에 등장하는 가장 쉬운 몬스터인 주황색 풍선조차 종종 불규칙한 패턴을 보이면 뒤통수를 때려버린다. 또 폭탄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호러인데 물론 탱크, 총, 미사일이 나오는 게임도 있지만 유독 붐버맨이 무서운 이유는 자신의 무기에 자신마저 무기력하게 죽을 수 있다는 요소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깐 RPG 게임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명검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해봐. 불신과 함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긴장감이 드니깐. 하다하다 무조건 좋은 것이어야 하는 아이템도, 심지어 다음 스태이지로 넘어 가게 만드는 문 역시 실수록 폭탄을 터트리면 강력한 몬스터가 무자비하게 나오는게 자비라는 것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붐버맨 게임 스토리도 그렇게 자비로운 세계관은 아니다. 사실 붐버맨은 지하미궁에서 악당 부하로서 폭탄을 만드는 로봇이었고 (이제야 로봇인 거 알았음) 이런 일상이 너무 싫은 붐버맨은 지하미궁을 탈출하면 사람이 된다는 소문을 믿고 탈출을 감행하는데...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로봇이 자유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인간이 되길 원한다는 슬픈 설정. 큰틀로 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도구화 된 인간 투쟁 서사시로 보이는 건 나만 그런가? 그래... 나만 그러겠지. 그래서인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싫은 직장인으로서, 매일 반복되는 이 세계가 너무 싫은 이상주의자로서 붐버맨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와닿는다.
결국 붐버맨은 긴 투쟁 끝에 지하미궁을 탈출해서 사람이 되는데 바로 그 사람이 로드러너, 위에 내가 말한 무서운 게임 중 하나인 로드러너의 주인공이 되어 또 적에게 쫒기며 리미널 스페이스를 연상하게 만드는 반복되는 스테이지가 나온다. 붐버맨으로 탈출해도 로드러너 되어 또 반복되는 일상. 반복적인 노래 구조. 약간의 변형만 됐을 뿐 큰틀로 봐서는 똑같은 스테이지.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타나는 적. 그리고 무한 루프. 원래 리미널 스페이스가 공포감을 주는 이유는 공간에 있어 구분이 없는 어떤 반복적인 구조물이라서 그렇고 나는 계속 반복되어 지는 일상에 공포심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붐버맨 게임에 공포를 느꼈나 보다.
물론 허드슨 소프트는 초기 붐버맨의 설정을 폐기하고 대신 귀여운 캐릭터가 동료들과 함께 떠나는 유쾌한 모험 설정을 유지하고 있는데, 하긴 초기 저 우중충한 설정으로는 계속 시리즈를 이어갈 수 없는건 당연할 터. 그래도 내 기억 속에 남는 붐버맨 설정과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풍기는 그 공포... 어린시절 호러블한 추억의 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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