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류츠신의 <삼체> 역시 대단한 우주 배경의 이야기지만 역시 최고의 우주 이야기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내 마음 속의 넘버원이더라. 나도 알아요. 우주 이야기를 섞어도 큰 틀로 보면 신파라는 것을.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데우스 엑스마키나 같은 ‘그들’이 등장해 모든 일을 퉁쳤던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세례를 받은 것처럼 신성해지는 느낌에 있어서 이만큼 좋은 영화도 없더라. 흙먼지 날리는 농장에서 시작해, 별먼지 날리는 우주로 날아가도 너의 사랑을 잊지 않으리. 가슴 깊이 느껴지는 쿠퍼의 부성애는 미숙하지만 신의 사랑과 닮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 역시 인류를 향한 신의 사랑을 닮았기에 이 영화가 신성하게 느껴지나보다. 그런데 분명 난 부성애를 소재로 한 국산 애니 <미스터로봇>도 봤거든? 그런데 그 영화를 볼때는 부성애가 전혀 느껴지지 않다 못해 뭔가 찝찝했거든? 왜 인터스텔라에는 부성애를 느끼고 미스터로봇에는 부성애를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것을 넘어서 왜 불쾌함까지 느꼈던 걸까. 분명 같은 부성애를 이야기하는데 왜이리 느낌이 다른걸까.
그전에 미국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와 한국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를 비교해보자. 미국이 어떤 개방적인 이미지 때문에 가부장제가 전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가족중심주의적이다. 당장 크리스마스만 봐도 한국은 연인끼리 보낸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미국은 무조건 가족과 보낸다는 개념이 있고 그래서 크리스마스 소재로 한 영화에 가족애가 꼭 나오는 것이 그 이유인 것. 부성애를 다룬 영화 역시 뭔가 멋진 아빠, 든든한 아빠, 자기만 믿으라는 아빠가 나오고 미국 영화 특유의 자의식 과잉과 겹치면서 부성애가 무려 세계 구원까지 확장되는 서사가 많다. 대표적으로 아마겟돈, 투모로우, 인디펜던스 데이2, 위에 말한 인터스텔라가 있겠지. 또한 <아이엠샘>이나 <우주전쟁>처럼 어린 딸이 등장한 영화도 있지만 대부분 성인 딸, 그것도 미래의 사위가 될 남자가 등장하면서 “우리딸 잘 부탁한다...” 라며 희생하는 스토리가 많으니, 그야말로 일방통행적인 부성애다.
그에 반해 한국 영화에서 보여주는 부성애는 거의 아버지와 딸이 상호작용을 한다. 한국 영화 속 부성애를 표할때는 뭔가 상처있거나 문제있는 아버지 + 그런데 아내는 반드시 없어야함 +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보다 똑부러진 딸이 등장한다. <클레멘타인>, <7번방의 선물>, <부산행>, 그리고 내가 봤었던 미스터 로봇에서 말이지. 이 문제 많은 아버지들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부성애를 끄집어 내야하는데 그 동력이 본인 스스로가 아닌 귀여운 딸, 때묻지 않고 순수한, 오직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 아이에 있다. 그러다보니 절대 성인인 딸은 등장하지 않고 사위는 볼수조차 없으니, 오직 사랑이처럼 귀여운 어린아이 모습이어야지 부성애가 솟아 오른건가?
내가 이질감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귀여운 딸의 모습에 간신히 힘을 내는 남자에게 어떻게 부성애를 느낄 수 있냐는 말이다. 부성애는 쌍방구원이 아닌 일방통행이다. 딸을 통해서 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내는 것이 아닌, 내 외침이 우주 너머 사라져버릴 진동이 될지라도 끝까지 외치는 마음, 그게 바로 부성애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당연히 이만큼 해줘야지 하는 부모는 문제 있는 부모가 맞다. 내가 밥차려줬으니 너는 설거지하라고, 내가 너 키웠으니 키워준 비용을 어른이 되어서 갚으라고, 내가 너를 키우기 위해 힘든 직장생활을 하니 너는 그만큼 귀여움 떨고 애교 부리라는 양육방식은 절대 좋은 양육 방식이 아니다. 아빠 힘들 때마다 응원해주고 애교 부려야하는 딸은 딸이 아니다. 오히려 치어리더에 더 가깝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성애는 일방통행이어야지 딸을 통해서, 딸을 닮은 존재를 통해 내 상처를 치유한다는 쌍방구원은 부성애를 가장한 그냥 로맨스 영화다.
이처럼 부성애를 가장한 로맨스 영화는 예술 영화 정도는 되어야 이해해주는 장르인데, 영화 <레옹> 역시 성인 남자와 어린 여자 사이의 부성애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예술영화, 어린 여배우가 그 영화를 통해 성인 남성에게 수시로 성희롱을 당하고, 감독은 16세 소녀와 만남을 가진 말많은 영화다. 영화 <아저씨> 역시 원빈이라는 배우가 매우 잘생겨서 그나마 무마됐지, 여자 아이의 대사가 아저씨를 아저씨로 대하지 않고 무슨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거 같더라. <미스터로봇> 역시 딸 아이와 닮은 여자 아이를 통해 부성애를 보여주려고하지만 그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도무지 딸과 아빠 사이라고 볼 수 없다. 소녀가 처음보는 성인 남성의 텅빈 집을 가구로 채워준다든지, 옷가지를 개어준다든지, 특히 그 관계의 정점에 달하는 장면이라면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로봇이 딸과 같은 여자아이에게 빨간 구두 잘 어울린다고, 거기에 여자 아이는 무슨 사랑 고백을 받는 것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나 아빠한테 옷 잘 어울린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수줍은 미소 지어본 적 단 한번도 없는데 도대체 어떤 부녀가 그렇단 말인가.
부성애의 탈을 쓴 로맨스 폐해는 소효 작가의 <아빠는 몰라두 돼>인데 이 책에는 아예 딸과 아빠가 뽀뽀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서로 빼빼로 먹다가 뽀뽀하는데 아빠는 얼굴까지 붉어지면서까지 하는... 아니 이걸 판다고요? 마치 성추행 혐의가 있는 로타의 사진집을 예술 사진집이라고 파는 거랑 뭐가 다른건가. 이건 내가 여자이기에 보수적이라서 아니라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도 문제 될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엄마는 몰라두 돼>라고 하면서 “엄마 편식하면 뽀뽀 안해줄꼬야...”라며 잘생긴 소년이 말하는 모습 나오면 온갖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자판 n번방이니 뭐니 조리돌림할텐데 막상 저 일에 대해서는 조용하더라. 생각해보니 건강한 부성애가 나올 수 없는 이 땅에서, 해외까지 경악한 n번방 사건부터해서, 2019년 미 국무부가 동남아 아동성매매의 주요 수요자라고 대놓고 지적하다 못해 “한국 정부는 해외 아동섹스 관광에 나섰던 한국인을 단 한명도 처벌한 적이 없고 이런 관광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1 지적받은 국가에서 무슨 건강한 부성애를 찾으라고.
쌍방구원이 되길 바라는 로맨스적인 부성애, 더불어 자기 안에 숨쉬는 순수한 소년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건 순수한 딸 뿐이라는 오버액션. 열심히 노력하면 다 알아서 눈치챌텐데 별것도 아닌 일에 고래고래 자기 연약하다고 소리치는 아저씨들, 동시에 미 국무부에서 대놓고 지적할 정도로 문제 많은 아동성매매 한국 남성. 그러한 남자들의 힘을 끄집어 내기 위해, 남자 안의 순수함을 끄집어 내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딸과 어린 여자들. 도대체 그러한 남자에게 어떻게 부성애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왜 이런 땅에 태어나가지고 자기 연민 투성이인 남자들과 상대해야 하는 걸까. 순수함도 어릴때나 해야 합당하지 다 큰 아저씨가 되가지고 순수함 타령하는 것은 그건 그냥 피터팬 증후군이다. 이런 피터팬들은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주는 일방통행적인 부성애 영화를 절대 못만들겠지. 자기 연민 판치는 아저씨들 이야기는 진짜 잘 나올 거 같은데 말이다.
1)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25773.html
“한국남성, 동남아 아동성매매 주고객”
미국 국무부가 한국의 인신매매 및 해외원정 성매매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각) 공개한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에서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대해선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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