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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어스 팬픽 / 이모탈 5

단편소설, 팬픽, 팬아트/팬픽

by @blog 2025. 11.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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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명의 빛 교회는 기독교를 토대로 한 종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었는데 우선 아마겟돈과 같은 거대한 실수가 일어났기에 곧 최후의 심판이 온다는 기독교와 다르게 여명의 빛 교회는 외우주 개척에 있어서 매우 능동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종교 단체와 파종단에 선발되지 못한 학술원 후보생들의 만남이라... 과학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학술원에서 자라온 후보생들이 어떻게 종교단체와 어울릴 수 있는 건지. 만약 그들이 일반인이었으면 청수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을테고 그들 역시 문제없이 이 지구를 탈출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청수의 비밀에 너무도 깊이 몸담고 있는 학술원 후보생이었고 어떻게 보면 청수의 자산과도 같은 그들이었기에 제거가 필수적이었다. 최대한 변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으니깐.




나랑... 동갑이네.




  호텔 책상 위 널부러진 서류들 사이로 한 여성의 사진과 그녀의 나이가 눈에 들어오자 재문이는 말했다. 태풍의 눈 안에 있는 사람, 여명의 빛 교회의 지도자로 추측되는 그녀는 재문이와 같은 20세였고 과연 종교 지도자답게 사진만으로도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힘없어 보이는 나른한 눈은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고 20세라는 어린 나이 역시 신비한 느낌을 더욱 증폭시켜주었다. 다만 그 20살이라는 나이는 정확하지 않는 정보였는데 왜냐면 카비탄 보호국의 카비타 타쿠르처럼 추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다보니 허울적이고 증폭된 정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재문이는 주동자로 확정된 후보생 리스트와 여명의 빛 교회 교주의 정보를 살생부 보듯 차례차례로 번갈아 보았으니,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나이 먹었든 상관없었다. 죽음처럼 공평하고 은밀하게 그들을 제거할 것이니깐.



- 똑똑 똑똑 똑



  박자를 맞춘 노크소리. 그와 동시에 울리는 전화벨. 그 정도 만으로도 노크한 사람이 비서가 보낸 보충 인력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재문이는 문을 열어 어색한 미소로 그들을 반겨주었다. 형, 누나. 안녕?
 
 
 
 

 
 


  그러나 남녀 한쌍은 재문이의 인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동태를 살피듯 멀찍히 지켜만 봤고, 특히 3번 같은 경우는 아예 62번의 등뒤로 숨어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눈알을 굴리며 훔쳐봤다. 비록 건방진 면이 있긴해도 3번과 62번에게 있어 77번은 엘리트 요원에 속했는데 그런 그를 상대로 심문하고 정보까지 빼냈다는 사실을 듣게되자 본능적인 경계심, 혹시 자신에게도 심문을 가장한 고문을 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했다. 특히 주동자와 혈육관계인 3번은 재문이와 눈도 마주치지도 못하고 자꾸만 시선이 바닥으로 가 있었다.





2



  재문이에게 있어서 62번은 얼굴과 이름조차 희미하게 기억날 정도로 평범하고 특색이 없는 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위 60%인 base 등급에 해당될 정도로 그는 뛰어나지도 않았고 특출난 능력을 가진 후보생이 아니었으니깐. 재미있고 착한 형은 맞지만 천재와 수재들이 날뛰는 미친 학술원에서 그는 너무나도 무난하고, 평범하며, 간신히 커트라인에 들어 졸업할 정도로 어떤 강한 의지가 없어보이던 후보생이었다. 3번 같은 경우는 62번보다 높은 ace 등급에, 대외활동 중 ‘청두 진상 규명 조직화 해산’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잠시 학술원에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이내 200명 가까운 후보생과 별반 다르지 않는 평범한 후보생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다만 그녀는 3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줄을 서거나 훈련 할 때 맨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1번이 자살을, 2번은 자진 퇴학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1번의 죽음은 13기 학술원 후보생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로 장렬하게, 귀족자제라는 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절제감도 없이 죽었다.  사실 1번은 자신의 번호답게 1등 후보생이 되고 싶은 마음에 수업시간 중 가장 앞자리에 앉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으며, 자기보다 어린 재문이에게 다가와 호기심 많은 학생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아까 썼던 코딩법 무엇이였냐고 물을 정도로 학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재문이 역시 77번처럼 기분나쁜 견제도 하지않고 26번처럼 막연히 귀여워 해주는 것이 아닌 자신을 선생님처럼 대해주는 1번 형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때마다 자신에게 쪼르르 찾아와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이것저것 묻는 1번에게 재문이는 성실하게, 그리고 정말 형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 다해 가르쳐주었다.


- 탕


  그러나 방첩 수업 중 총기 조립을 하던 시간, 장난감 총과 다르게 묵직한 감각이 도는 진짜 총을 조립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조립하는데 성공한 1번이 자신의 입안에 총구를 넣고 발사하였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후보생들은 한템포 늦게 소리지르고 책상 아래로 숨었지만 이미 1번의 뇌수부터 해서 피가 곳곳에 흩뿌려지면서 교실은 피비릿내로 가득했다. 그리고 구멍난 그의 머리에 계속해서 피가 흘러 나오면서 바닥을 적셨다.


누나...


  평소 재문이는 26번이 자신을 너무 애 취급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또다시 그녀의 품안에 들어가 애처럼 굴었다. 하지만 26번 역시 충격이 컸는지 재문이의 머리를 감싼 손끝에서 평소 느낄 수 없었던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덜덜 떠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1번의 모습. 그리고 그의 옆 줄에 앉아 있었던 2번. 3번과 매우 닮은 그녀는 책상 아래 숨은 후보생들과 달리 기이할 정도로 1번의 모습을 골똘히, 그리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마지막 그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처럼.

 
  사건 후 행동예측과에서는 1번의 행동 원인이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고 특히 성적 압박이 매우 컸다고 결론 지었다. 그리고 후보생들이 PTSD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예측과에서는 정서적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을 후보생을 선별하여 개별 상담을 진행, 상담사는 재문이에게 1번 후보생은 실력에 비해 욕심이 너무 과한 후보생이었고 이는 자기객관화 부족으로 인한 자만심이였다며 그의 행동을 지적하는 겸 재문이를 위로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달 동안 찝찝한 감정을 계속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재문이가 보기엔 1번 형은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후보생이 아닌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찾아와 능동적으로 질문했던 그의 눈빛 속에는 어떻게 해서든 천재를 따라잡고 싶어하는 발버둥이 엿보였으니깐. 




 
 
 


재문아 너 탓이 아니야. 그냥 오빠가 스스로 압박감을 느꼈을 뿐이야. 

나도 알아. 그런데 나 역시 압박감을 느꼈나봐.

걱정도 많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데 뭐. 과거 일이야. 돌이킬 수 없는 일.
 


  재문이는 결코 둘을 심문을 하는 것이 아닌 임무 파트너이자, 동기생으로서 동질감을 높여주기 위해 학술원 때의 이야기를 꺼냈고 주동자 중 한명인 학술원 자퇴생 2번, 그런 2번의 여동생이자 1번의 여동생이기도 한 3번에게 레몬을 올린 홍차를 건네주었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친언니가 주동자라는 사실에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차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그저 잔 테두리만 만지작 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1번은 내 친오빠가 아니야. 고아원 출신의 양자거든. 학술원에 들어가 최우수 등급을 받고 우리 가문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떤 보험 같은 사람이었어. 그런데 그게 어디 쉽겠니? 입학도 힘들지만 졸업은 더욱 힘든 곳이 학술원이잖아. 생각보다 천재가 너무 많았던거야. 최우수 등급은 꿈도 못꿀 정도로 말이지. 노력만으로는 안됐던 거야.
 

3번처럼 재문이에게 홍차를 건네받은 62번은 그건 자의식 과잉이자, 사서 고생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이해가 안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발버둥 치는 거야? 학술원에 졸업하는 것 자체가 엄청 대단한거야. 고위직이 되려면 뭐 조금 높은 등급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졸업만 해도 상급 공무원은 될 수 있잖아. 청수 계열사에 임원직은 해 먹을 수 있고. 50살 먹은 아저씨한테 꼬박꼬박 선생님 소리도 듣고. 

그래도 기왕 들어가는 거 save 등급이 되는 게 좋지 상급 공무원만 꿈꾸면 쓰나.

그런 애들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거야. 재문이 봐바. 우리보다 훨씬 어린데 1등 해 먹었잖아. 결국 될애만 되는거라고.

귀족가에 입양되는 조건으로 학술원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기로 하고 들어온거야. 성적이 지지부진하다면 파양시키겠다는 각서까지 썼고.

그런 거였어?

그래. 어디 귀족가에서 공짜로 입양해주는 줄 알아?

오빠는 그렇다쳐도 누나는 왜 자퇴했어? 조건없는 진짜 귀족이잖아.

나도 몰라. 그 사건 이후로 갑자기 사라졌으니깐. 나하고 가족들을 버리고.

너희 누나 그때 사건 때문에 충격이 컸나봐.

충격은 무슨. 실연의 아픔이겠지. 여동생보다는 피하나 섞이지 않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책임감 많은 남자한테 홀딱 빠져서 그런거 겠지.


차분하던 3번은 언니에 대한 깊은 앙금이 있었는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냥 친한 건 줄만 알았는데 그런 사이였다니...

자세히는 나도 몰라. 그 오빠가 들어오고나서 나와 어울리지 않았으니깐. 나혼자만의 추측인 거지.

너희 집안도 참 다이나믹하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게 다야. 미안해 재문아. 우리 언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아까 말한것처럼 학술원 자퇴 이후 어떠한 연락도 없었으니깐.
 
 

  쩔쩔매는 3번과 달리 후루룩 소리를 내며 홍차를 시원하게 마시는 62번, 그런 62번을 향해서 3번은 손등으로 툭툭치고서 무식하게 마시지만 말고 너도 아는 정보가 있으면 빨리 다 말해서 도움 좀 되라고 했다. 62번 역시 자기도 도움을 주고 싶지만 주동자인 3번과 85번, 77번과 전혀 친분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다며 손사례를 쳤다. 3번은 너무 이른 나이에 퇴학해서, 77번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재수 없는 놈이었고 85번은 변태 포르노를 즐겨 보는 놈이라 가까이도 하게 싫다는 게 이유였다. 에이 말도 안돼. 연관점이 있으니 우리를 보충 요원으로 추천해준 거겠지. 3번의 말에도 불구하고 62번은 정말 없다고, 대신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외교부와 연관이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일본을 포함해 동남아시아 쪽 부서야. 대사까지는 아니고 서기관 정도는 돼. 그런데 말이 서기관이지 실무 능력이 전무하다보니 한참 배우고 있지.

누가봐도 학술원 출신이라는게 티가 나. 젊은 것도 그렇지만 빨간색으로 염색했는데 서기관까지 오를 수 있는 건 후보생 말고는 없잖아.

혹시 나 디스하는거야?

나하고 다른 곳에서 일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 나였다면 너 머리색 두고 하루종일 디스했을걸?

재문아! 솔직히 말해봐! 맨날 훈련받던 곳에 졸업하고 이제야 내 마음대로 염색 좀 하겠다는데 이거 완전 노친네 같은 소리 아니야?

빨간 머리... 멋낸 게이같아.

게이는 무슨. 재문이는 여성용 정장 입고 청수 재단에 갔는데? 그러면 재문이도 게이야?

정말이야? 진짜 여성용 정장을 입고 갔다고?
 
 


너무 놀라서 눈이 커진 3번의 모습에 재문이는 맞다는 뜻으로, 하지만 조금은 창피했는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같아...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변곡점도 지났고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해도 이상할 거 없는데 자기하고 싶은대로 살아야지. 안그래?
 


 
  그렇게 말한 62번은 호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3번과 재문이에게 건네주었지만 재문이는 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62번은 바닥에 털석 앉아 홍차를 마실 때처럼 우렁찬 목넘김 소리를 내며 맥주를 마셨는데, 긴장감이 서려있는 3번과 재문이와 달리 62번은 초조함이나 불안감이 전혀 없어보였고 왜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취기가 오르기도 전에 이실직고 했다.
 



  너희들 일본 안 가봤지? 출장 때 가봤는데 진짜 말도 안나오더라. 지옥이야 지옥. 물론 우리 쪽도 하르방 쓰나미로 타격을 받았지만 일본은 제대로 직격탄으로 맞아 도시고 뭐고 다 쓸려 나가 아무것도 없어. 부표인줄 알고 가까이 다가가보면 물에 불은 사람 시체더라? 도시에는 곰팡에 썩은 건물 밖에 없더라. 일본 뿐만이 아니야. 핵전쟁 때문에 방사능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반감기는 커녕 평생 들어가지도 못해. 다시 돌아 갈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어. 지구는 끝났어. 여긴 가망성 없어. 마음 같아선 나도 파종단이 되고 싶은데 청수가 보기에는 내가 아직 부족해보였나봐. 하긴 이때까지 졸업한 모든 학술원 졸업생부터해서 능력 좀 있다는 사람만 고르고 골라 뽑은 파종단인데 내가 뽑힐리가 없지.


  죽어가는 지구의 문제, 그건 청수재단 신재생 에너지 업채에서 일하고 있는 3번도 잘 아는 현상이었다. 유지하는 것은 힘들지만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참 쉬워, 그치? 3번은 썩은내 진동하는 땅에서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보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던 새로운 행성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백번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 역시 파종단에 들어갈 수 있을 자격이 주어진다면 지금 하던 일 다 때려치고 당장 갈 수 있다고 말하며 62번처럼 시원시원하게 맥주를 마셨다. 호텔 룸 안에 분위기가 갑자기 차분해지고 어떤 비교와 아쉬움과 약해진 결속력이 감돌기 시작했고 자칫하면 보충 요원들과의 거리감이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에 재문이는 그들을 다시 봉합해보기로 했으니, 회한과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대할 때 가장 좋은 자세는 자신을 낮추는 것, 자신이 더 힘든 위치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것 뿐. 재문이는 파종단에 선정되는 것이 막상 그렇게 까지 좋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학술원 생활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외출증도 지금 임무 때문에 간신히 나온거지, 사실 임무 끝나자마자 미륵보살돔으로 돌아가 외기권 적응 훈련 받아야해. 그렇게 훈련 받고 우주선을 타더라도 200년 동안 콜드슬립 상태에 있어야 하고. 그러다 해동이 잘못되면 200년동안 잠만 자다 죽는 거지. 만약 콜로니 자동 비행 오퍼레이션이 고장 나서 잘못된 경로로 간다던가, 행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없는 대참사라도 벌어진다면 파종단은 영영 우주 미아가 될테고. 계속 어둠 속을 비행하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그대로 말라 죽겠지.

 



그 말에 3번과 62번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자신들은 절대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에 재문이는 호텔 무드등과 같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알아.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 원래 모든 면에서 생각해 보는 타입이라서 그래. 다각도로 보는 것을 좋아해. 그리고 내가 안 사실은 새 행성으로 가더라도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는 거야. 파종단이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해. 우주선을 만들어 주고 새행성으로 보내 준 보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만 해. 형 누나를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형 누나의 후손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거야. 그전에 우선 이 임무부터 잘 해보자. 걱정할 거 없어. 누나가 했던 대외할동보다 훨씬 쉽고 학술원에서 받았던 훈련보다 더 쉽겠지. 우린 그 힘든 곳에서 별탈없이 졸업했잖아. 우린 보통 사람하고 많이 다르고 강하니깐 걱정할 거 없어.


 
  어째서 미륵보살돔 사람들이 재문이를 두고 젊은 현자라고, 애늙은이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셋 중 가장 앳된 얼굴에 수줍은 많은 성격부터 해서 어리버리 타는 사회초년생,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볼살과 젖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말들은 성숙함을 넘어 노인의 인생 조언처럼 들렸으니깐. 재문이의 말에 잠깐 보였던 균열은 금새 봉합되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62번은 일본에 갔을 때 재문이가 생각났다고 했다. 만약 과거 진지해일 때 잠수정으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면서 말이지.

 


너는 나한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야. 이번 작전 성공을 위해 반드시 최선을 다할게.

맞아 재문아. 우리 동기 중에 너를 미워하는 애가 있으면 그건 질투인 거지 모두 너에게 감사하고 보답하고 싶어해. 나도 힘 닿는데 까지 해볼게.

 


살짝 들뜬 그들의 사이로 갑자기 들리는 꼬르륵 소리. 소리의 주인인 3번은 얼굴이 새빨게졌고 62번은 저녁식사 시간이 된지도 모르고 너무 열심히 이야기해서 그런거라며 밥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재문이 너 여기서 뭐 먹고 지냈냐? 왠지 효율성 좋은 에너지바만 먹고 살았을 거 같은데.

형. 나도 사람이야.

너 학술원에서 이미지가 어떤 줄 모르지. 인간미도 없고 또 공부는 잘해서 거리감 느껴지더라,
 
 


기지개 켜는 62번 옆에서 겉옷을 입는 3번도 덧붙였다.
 

 


너무 잘났던 거지. 그런데 이야기 나누어 보니 좀 편해진 거 같아.

우선 생긴 것부터 친숙하게 생겼잖아. 내가 아는 사촌동생이라 너랑 똑 닮았어.

나 아는 동생하고도 닮았던데.

애들아, 내가 아는 식당으로 갈래? 직장이 요 근처라서 이쪽 지리는 진짜 빠삭하게 알아. 내가 사줄게.

오. 돈 잘 버나 봐?

여자친구가 없으니 돈 벌어도 쓸때가 없더라.

빨간머리... 게이 같으니깐.

 


 
   학술원 때 서먹했던 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원수처럼 티격태격 거렸고 결국 동생인 재문이의 중재 덕분에 간신히 호텔방을 나가고 로비까지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답답한 호텔방을 나와 로비를 걷는 그때, 아 맞다! 차키! 62번은 호텔룸에 차키를 두고 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요즘 지문 인식 안되는 차도 있냐며 의아하게 보는 3번. 원래 지문인식이 되던 차였이지만 튜닝을 해서 지문인식 기능을 빼버렸다고 했고 62번은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빨간머리에 튜닝 자동차라니... 품격 어마어마하다.

왜. 형이 하고 싶다는데.

물론 무엇을 선택하던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표준편차라는 게 있잖아.

그거 너무 편협한 사고야.

편협한 사고는 무슨. 살아보니 잘난 애는 끝까지 잘나고 못난 애는 끝까지 못나더라. 오히려 첫인상에 편견을 가득 가지는 것이 신변에 좋아.

그러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 빠앙. 그때 둘의 대화를 가로 막듯이 크렉션 소리가 호텔 로비에 울려퍼졌고 하나도 아닌 여러개의 차들이 내는 소리였다. 재문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호텔 밖 도로위의 상황을 보니 하나의 차가 도로를 달리다 말고 호텔 입구 근처에서 차를 새웠고 그것으로 인하여 도로가 혼잡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러시아워 시간대라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3번은, 역시... 신변을 위해서라면 저런 첫인상 나쁜 사람은 피해야 하는게 맞아. 그치?


 
차주가 대단하네. 도로 위에 떡하니 새워두고. 타이어 펑크 났나?

그런건 아닌 거 같은데.

혹시 차주가 없는 거 아니야? 원격 조종인가?

 
 
  원격조종으로 호텔 입구 쪽에 차를 세우고 하필 자신들이 로비에 내려오는 타이밍이라는 사실에 의심이 가는 순간, 재문이는 3번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바닥에 엎드리게 했고 그리고 둘이 바닥에 닿기도 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유리가 박살나면서 순식간의 로비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 삐이. 미쳐 막지 못한 귀에는 굉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이명이 들렸고 그 소리가 잠잠해지자 천천히 들리기 시작하는 박살난 자동차들의 크랙션 소리,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 살해 의도를 가지고 가연성 물질을 가득 담았는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재앙의 소리. 재문이와 3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불타오르는 차를 바라보았고 그것은 형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탄 모습에 생명의 위협을 실감하게 되었다.
 

말도... 안돼...
 

그리고 보기만해도 얼굴 뜨거워지는 현장을 운좋게 피한 3번은 아직도 충격이 컸는지 넋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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