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건에는 평균적인 사용 나이대가 있다. 예를들면 프리큐어 요술봉. 물론 키덜트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사용한다. 자동차는? 어린아이들도 좋아하긴 하지. 하지만 어린이들은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하지 자동차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 탈모에 좋은 건강보조제는? 물론 진리의 케바케로 어린아이가 좋아할 수 있지만 아저씨들이 열광한다. 모든 물건에는 욕망을 해소해주는 힘이 있고 그 욕망이 있는 평균 나이대가 있다. 그러다보니 원하든 원치않든 그 나이대가 되면 그 나이대에 맞는 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철없다고 비난 받으니깐. 물론 시대가 바뀌어서 어른이 레고 장난감가지고 놀아도 아무 말 안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인식 깊숙한 곳에서는 나이대에 맞는 소비행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잡혀있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매우 엄격하고 지켜보는 눈도 많다.
이건 '소비행동'만이 아닌 '행동'도 그렇다. 20대 때 공부하는 것과 30대와 40대때 공부한다는 것에 반응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행동의 적정 나이가 지나가는 순간, 너 그 나이에는 힘들어, 나이에 맞는 도전을 해, 나이가 걸림돌이네요. 20대보다는 30대가 용인되는 행동의 수가 적고, 30대보다는 40대가, 40대보다는 50대가 적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떤 행동하는 것에 관대하게 생각하는게 줄어드는 것이다. 시도하는 것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갈수록 약해지는 가능성. 점점 높아지는 난이도.
그런데 재미있게도 게임에서는 정반대다.
게임에서는 나이 대신 레벨이 있다. 현실에서는 '경험'을 쌓으면 나이를 먹고, 게임에서는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높아진다.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없는게 많아지는 현실과 달리 게임에서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할 수 있는게 많다. 물론 게임 속에 레벨이 높으면 들어 갈 수 없는 나이제한 사냥터가 있긴 하다. 하지만 레벨이 높은만큼 갈 수 있는 사냥터와 지역이 훨씬 많아진다. 그리고 그 강해져가는 단계 중 유난히 레벨업이 힘든 구간이 있는데 온라인 게임 좀 해본 사람은 헬조선급 '헬렙'에 대해 알 것이다. 그 구간을 넘는 순간 캐릭터 외형이 변하고, 새로운 스킬이 생기고, 새로운 퀘스트와 새로운 사냥터, 그리고 강해진다. 헬렙을 넘지 못하는 유저는 어린아이로 보일 정도로 완전히 강해진 것이다.
헬렙이 있다는 것에 유저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 물론 고통스러운 헬렙 구간을 버티지 못해 게임을 접는 사람이 있긴있다. 하지만 많은 게임에서 헬렙 시스템을 도입했다는건 그것이 게임 유저를 유지시켜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헬렙구간때 게임을 접지 않았다. 왜냐하면 헬렙을 넘길 때의 강해진 나의 캐릭터를 보고 싶어서. 그리고 예상대로 헬렙을 넘길 때 그 짜릿함이란. 드디어 고렙 사냥터에 놀고 있는 나의 모습이란.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현실에서는 헬렙이 없다. 물론 비슷한 개념으로 아홉수가 있고 다른 나이 때보다 고생을 더 한다는 말이 있지만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괜히 아홉수 탓하는 것 뿐이지. 그렇게 현실은 헬렙 구간없이 새로운 나이대에 진입할 수 있다. 20대, 30대, 40대. 그리고 현실의 헬렙은 그 뒤에 찾아온다. 나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더군다나 헬렙을 넘기면 새로운 사냥터와 스킬이 기다리고 있는 게임과 달리 현실은 아홉수를 넘겨 새 나이대에 진입해도 어떠한 보상도 없고 오히려 도전의 제약만 늘어난다.
특히 한국은 젊은 나이에 벗어나면 새로운 도전과, 선택과, 소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 부정적인 힘이 강할수록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과 젊은 나이에 좋은 선택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상당하다. 만나자마자 나이부터 묻는 자랑스러운 코레아. 나이를 듣는 순간 가이드라인을 딱 설정하고 거기에 조금만 벗어나면 걱정아닌 오지랖으로 이야기거리를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 해왔었고 그게 자연스러운 줄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좋은 선택과 좋은 경험을 많이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괴악한 속담까지 생겨버렸다. 그래서 두번의 기회가 없는 젊은 나이때 안전하고 효율적인 '정해진' 가이드 라인을 따라간다. 그게 안전하니깐. 이 나이를 지나서 다시 도전한다면 사람들이 철 안들었다고 하니깐.
마치 안전하면서도 강한 캐릭터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인 추천 스텟, 추천 스킬 트리를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 레벨에는 이 사냥터를, 이 레벨에는 이 스킬을. 비록 정형화되긴하지만 강해질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니깐. 마치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20대때 당연히 대학나오고 토익따고 기사자격증 따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정형화 되어있다. 우리는 현실과 게임을 넘어서 뭔가 단단하게 정형화 되어있다. 도적 추천 스킬트리. 20대때 당연히 따야하는 자격증 종류. 마법사 추천 스텟. 토익과 기사 자격증. 이는 새로운 도전에 관대하지 않고 여유로움 없는 한국 문화를 대변한다.
그래서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마치 더 좋은 단계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인들이 게임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유가 아닐까? 이전 글에서(https://lostarks.tistory.com/206) 나는 한국인이 게임을 잘한 이유가 PC방 붐으로 인한 우연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PC방 붐이 사그라드는 시점에 디아블로3의 최단 클리어 기록을 한국이 이루어(?)냈다는걸보면 경쟁적하듯이 게임하는 게 아닐까?
반면 한국인이 잘 못 하는 게임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즐기는 것이다. 잘은 하는데 즐기는 방법은 모른다. 공격력 쩌는 캐릭터는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데 캐릭터 키우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다채롭게 육성하는 것에는 서툴다. 그 확률은 한 명의 대학생이 토익공부나 기사자격증을 때려치우고 내일이 기대될 만큼 좋아하는 취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취업에 좋은 인생 추천 스킬트리를 벗어나서 꿈을 찾으라고? 내가 너무 낭만적인 말을 하는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투자가 가장 효율적으로 보인다. 지금 투자하고 공부한 것들이 과연 미래에 가치있고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추천 스킬트리라고 투자했지만 업데이트로 인하여 오히려 최악의 스킬트리가 되는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럴바에는 가장 자신답고 재미도 있는 자신만의 스킬트리에 투자하는게 과연 비효율적인 방법일까? 강요는 아니여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인생은 단 한번 뿐이니깐.
사실 처음 게임 캐릭터를 키우면 잡캐가 되는게 당연하다. 이 스탯을 투자하면 어떤 능력이 올라갈까 궁금하고, 스킬이 멋져보여 이것저것 다 찍어서 그렇다. 이것저것 스킬 올리는 것처럼, 이 꿈 저 꿈 가지며 여러가지 활동 한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점점 찾게 된다면 문제없다. 처음부터 실수없이 좋은 캐릭터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니깐.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이번이 처음이라 초반에 잡캐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세계는 아니, 특히 한국은 처음부터 실수없고 완벽하게 캐릭터를 키우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추천 스킬, 스텟트리로 만들어진 완벽한 캐릭터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대한다. 왜 이렇게 빡빡하고 관대하지 않을까. 아니, 윗세대만이 아니라 왜 같은 세대끼리도 그렇게 엄격할까. 그리고 나이대별 가이드라인을 보고 '스스로 완벽한 캐릭만들기 시스템'이 도입될 때 가장 이익이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3월달이다. 3월은 대학교에서 신입생들이 첫 수업을 듣고 직장에서는 신입사원을 뽑는 시작의 달이다. 새로운 시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시에 뭔가 경직되어 굳은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그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정해진 20대와 30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해줄 수 있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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