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웅 이야기가 그렇듯 존포드는 지구군이 상대하기 힘들어하던 네메시스를 혼자서도 잘 해치운다. 레벨 1 'Down to Earth' 스테이지를 시작으로 레벨 5 'Nemesis Crisis' 스테이지까지 가면서 네메시스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그런데 존포드가 그렇게 열심히 처치하는 네메시스는 무슨 뜻일까? 물론 제작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리스 신화의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와 이름이 똑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지구는 복수의 신 네메시스에게 복수당할 운명이었다. 어째서 네메시스와 평화협정을 맺을 때 우주진출 금지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었을까. 과학발전이라는 목적으로 자연과 같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해악을 저질렀고 폭력성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메시스는 성난 사자에게 재갈 물리듯 인간이 더이상의 발전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명을 바꾸려는 존포드, 그리고 성공적인 성과들. 그런데 스테이지를 나아갈때마다 이상한 점이 발생한다.
1)
첫 스테이지는 문제없었지만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뒷배경에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오드아이의 고양이라던가 인류사를 보여주는 그림이라던가. 마치 조현병 환자가 환각을 보는 것처럼 규칙이없고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미지인 것이다. 특히 최종 스테이지 mirage of gaia 에서는 손을 뻗어 주먹을 날리는 유인원에 이어 바주카포를 든 군인의 모습이 나온다.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유인원이 최초의 도구인 뼈를 하늘로 던지자 우주선이 이어나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뼈라는 도구에서 우주선이라는 도구로까지 인류가 발전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너무도 유명한 미장센이다. 그리고 메탈블랙에서도 바로 그 미장센을 사용했다. 폭력성을 보여주는 주먹뻗은 유인원, 그리고 진화를 해서도 바주카포를 들며 여전히 폭력성을 보여주는 인간. 하지만 이제야 네메시스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존포드는 혼자서 계속 나아간다.
2)
반면 마더2 네스는 혼자 적들을 상대한 존포드와 달리 폴라, 제프, 푸와 함께한다. 그리고 여러모험을 거치면서 드디어 8개의 멜로디에 모으는 것에 성공, 그 멜로디를 듣자 네스는 깊은 잠에 빠져 자신의 내면세계인 매지칸트로 여행을 간다. 자신이 이때까지 만나 왔던 사람들, 어린시절의 자신, 자신이 때렸던 몬스터부터 녹아버렸지만 함께 즐겁게 논 눈사람까지.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는 금색 악마모양 조각상을 마주치게 된다. 매지칸트가 네스의 마음속이라면 그 악마 조각상은 네스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 잔혹성, 즉 악마와 같은 성격인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조각상을 물리치자 네스의 능력치는 압도적으로 좋아지고 최종 보스인 기가스와도 견줄만한 실력이 되었다.
3)
그리고 타임머신을 통해 로봇의 몸으로 과거의 기가스를 물리치러가는 네스와 동료들. 동굴 속에 들어가고, 내장처럼 보이는 길을 올라가고, 마치 자궁경부처럼 보이는 곳에 아기가 탄생하듯 얼굴을 드러내는 기가스. 그런데 기가스의 얼굴이 이상하다. 네스와 닮은 것을 넘어서 네스 그 자체인 것이다. 주인공이 물리치고자한 상대가 바로 자기자신이라니.
마더2 스토리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고 정확하다고 느끼는 해석은 해외유튜버 AVGN이 말했던 해석이다. 기가스를 물리치러 가는 모험, 사실 그건 네스 속에 있는 악의 근원 기가스를 퇴치하러 가는 퇴마의식인 것이다. 즉 네스는 기가스고 기가스가 네스인 것이다. 그래서 네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자신이 태어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자궁속에 있는 기가스이자 자기 마음속의 악을 퇴치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네스가 갓난아기때부터 초능력을 쓰는 것도 모두 기가스의 힘에 의해서였고, 8개의 멜로디를 모아 마음속 세계 메지칸트에서 만난 악마모양 조각상이 바로 자기안에 기가스가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자기와 똑닮은 기가스를 상대하는 네스. 그리고 싸움이 무르익자 기가스는 본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 모습은 육체의 형태라고는 없는 보기 불쾌한 빨간무늬 패턴. 더 소름끼치는 것은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능력, 무기, 이때까지 몬스터와 싸워온 모든 방법이 소용없었다. 이렇게 네스는 기가스에게 당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유일하게 공격이 통하는 방법이 하나있는데 그건 바로 폴라가 가지고 있는 기술 '기도'였고 그 기도는 이때동안 네스 일행이 만나왔던 사람에게 전파된다. 드래곤볼의 원기옥처럼 사람들의 기도가, 간절함이, 기가스를 물리쳐주길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서 절대 무너지지않을 것 같은 기가스가 힘을 잃고 마침내 마지막 기도의 일격으로 퇴치, 동시에 네스도 정신을 잃는다.
네스! 일어나!
3)
정신을 잃은 네스가 눈을 떠보니 자신과 함께한 동료와 같이 기도로 힘을 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기가스는 사라지고 파괴될 것이라던 지구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네스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와 엄마와 아빠와 더불어 같이한 동료들과 행복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마더2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1)
이제 메탈블랙으로 가보자. 엔딩이 하나밖에 없는 마더2와 달리 메탈블랙은 엔딩이 2개 있다. 먼저 배드엔딩부터 이야기하겠다. 마지막 최종보스인 오메가존을 상대로 존포드가 패배하면 지구에 있던 블랙 플라이 파일럿들이 단체로 분노해 네메시스 본거지인 목성으로 돌진한다는 내용이다. 그 블랙 플라이만해서 2만기라고. 하지만 네메시스 본거지는 사실 수성, 잘못된 방향으로 돌진한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면 만약 존포드가 최종보스를 물리치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표면상으로는 해피엔딩으로 분류되지만 그 엔딩은 누가 봐도 배드엔딩보다 더 암울해보였다.
최종보스를 물리치는 순간 마치 인류사를 압축한 듯한 이미지가 빠르게 지나가더니 지구가 반쪽이 나면서 박살난다. 그리고 존포드는 이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그것도 아니면 꿈인지 누구도 모른다는 독백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메탈블랙 역시 마더2처럼 제작자가 확실하게 내용을 해석해주지 않아서 내가 추측해본건데, 존포드는 네메시스의 환각에 걸려 지구를 네메시스 본거지로 착각해서 공격한 것이고, 스테이지 중간중간에 나오는 괴상한 이미지가 바로 환각에 걸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최종보스는 지구군이자 그가 박살냈던 것은 지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복수의 신 네메시스는 자신들에게 복수하려는 존포드를 보기 좋게 복수했다.
네스와 존포드는 둘 다 노력을 했다.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왜 네스만 운명을 바꾸고 존포드는 그러지 못했을까. 존포드가 네스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점은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이상한 환각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앞만보고 공격했다는 것이다. 반면 네스는 매지칸트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숙히 파악했고 내면의 악마를 퇴치함으로써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어 예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손자병법에서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자신과 남을 알면 백번싸워도 지지않는다는 말이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왜 그런 운명을 가지게 되었고 어떤 감정을 가지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확실한 방향성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네스와 존포드의 첫번째 차이점이다.
4)
그런데 만약 네스가 매지칸트에 가지않아 내면속의 악에게 휘둘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네스는 존포드와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3명의 동료가 있었으니깐. 존포드와 네스가 다른 점 두번째, 바로 동료의 유무이다.
물론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모르기도 하다. 글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만들때 합평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평가를 받는 이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제3의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존포드는 자신이 네메시스의 환각에 빠졌다는 사실을 혼자였기 때문에 몰랐었고 반면 네스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네스가 기가스의 환각이라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고해도 동료들이 저지했을 것이다. 운명을 바꾸는 방법도 그렇다. 혼자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문제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까운 친구와 동료의 조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 동료가 없다고해도 독서나 예술, 하다못해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통찰력을 키우면 된다.
그리고 세번째 네스와 존포드의 차이점이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요소는 생각의 유연함이다. 물론 요즘은 누구보다 편견많고 호기심이 없는 어린이들이 많지만 어른에 비해서 어린이는 사고가 유연하다. 버릇없다는 말을 들어도 쉽게 복종하지않고 타인의 생각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반복을 지루해하면서 모든 가치를 자신이 판단한다. 니체의 철학중에 어린이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도, 예수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어린이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이자 새로운 가치평가 때문이다. 단순이 운명을 바꾸는 것에 넘어서 자신이 운명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 운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처럼 철없고 다른 말로는 자신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즘의 어린이들은 너무 빨리 인터넷을 접해 어른이 정한 가치를 너무도 빨리 따라가는게 문제라서 나이와는 상관없어보이지만 말이다.
운명론은 계급사회와 궁합이 좋다. 특히 계층간의 이동이 활발하지않고 빈부격차가 클수록 운명론은 더욱 강해진다. 자본이 많고 적음에 따라 미래는 정해지고 성격마저도 정해진다는 운명론이 판치는 지금, 겉으로는 민주주의국가처럼 보이지만 실상 까보면 계급사회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협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력을 우습게 여기는 것, 도전조차를 헛된 노력이라고 보는 것,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손놓아버리는 것도 너무 과도하게 강해진 운명론 때문이다.그와 동시에 운명을 바꾸었던 네스가 가지고 있던 세가지 요소는 현대사회에서 보기 힘든 요소가 되어버렸다. 유튜브 동영상만 보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시간이 있었던가? 직장, 돈, 부동산 이야기를 떠나서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다른사람이 정해놓은 생각에 떠나서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어린시절 이후로 언제였는가.
하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정해진 운명을 자기 힘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실패해 좌절해서 그렇지 누구든 한번쯤 간절함을 담아서 도전해본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것이야말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운명에 따르는 것을 싫어한다는 증거다.
이미지 출처
2) www.youtube.com/watch?v=yVvdgbjZvhY
3) bbs.ruliweb.com/pc/game/78296/read/3717933
4) www.pinterest.co.kr/jaelinmcke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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