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5일. KTF를 대표하던 저그 선수 홍진호는 은퇴한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성기때 라이벌인 임요환에게 스타크래프트2를 선물로 받은 재미있는 해프닝도 있었고 말이다. 수많은 뉴스기사와 관심을 받고 은퇴한 홍진호와 달리, 제주 페스티벌 32강에 홍진호를 이기고 정수영 감독의 눈에 들어와 프로게이머가 된 한 명의 저그 선수는 간단한 세레머니를 끝으로 조용히 은퇴했다. 마지막 은퇴경기만큼은 이겨보려고 했지만 진영수에게 GG를 치는 그 선수. 과거 진영수와 같은 연습생이였을 때 형, 동생하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행보가 달라질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마지막으로 홈런, 덤블링 세레머니을 했지만 씁쓸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김민구는 한때 홍진호 다음으로 KTF 저그를 이끌 수 있었던 선수로 주목 받았지만 결국 이스트로에서 조용히 게이머 생활을 마무리한다.
2005년 당시 KTF에는 각 종족마다 주목받는 신인들이 있었다. 저그라인에는 강병규랑 똑같이 생겨 '강병규 저그'라는 별명을 가진 김민구가 있었는데 2004 WCG에 16강, MSL에서는 3연속 8강으로 가는 실력을 보여준다. 특히 이적선수가 아닌 KTF 자체적으로 키워낸 선수라서 더 눈길이 갔으나 이상하게 2004 당신은 골프왕 MSL 승자조 8강에서는 김정민에게, 패자조 8강에서는 조용호에게 2대1로 같은 팀원의 손에 의해 패배한다. 다음 MSL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05 우주닷컴 MSL 승자조 8강에서 박정석을 만나 2대1로, LG CYON MSL에서는 패자조 8강에서 강민에게 2대0으로 지게된다. (홧김에 KTF에서 무단 이탈해도 이해해 줄 수 있을 듯)
MSL 뿐만 아니라 김민구는 프로리그에서도 같은 팀원인 홍진호와 조용호에 비교해 스타성과 실력 모두 약한지라 출전기회가 많지 않았다. 2005 전기리그에는 1패, 2005 후기리그에는 2승 1패. 만약 김민구가 KTF가 아닌 다른 팀에 있었더라면 주전선수로 뽑혀 프로리그에 자주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텐데 하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곳에 있어서 유망주, 기대주로만 평가받고 출전기회도 적었다. 결국 CJ엔투스로 이적하지만 이미 기량은 줄어들었고 이스트로에서 조용히 은퇴한다.
그러면 프로토스 라인에는 어느 선수가 있었냐, 바로 조병호선수다. 생소하게 들리는 게이머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역시 처음 들어보는 선수였으니깐. 조병호 선수는 꽤나 올드게이머였는데 2002년 KOR팀에 있었고 2004년에 KTF로 이적한다. 그의 특기라면 엄청난 물량과 힘인데 2002년에 있었던 박정석과의 경기를 한번 보도록 하자. (오래된 경기의 출처는 늘 그랬듯이 승연적 공간 블로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ZLSUwDSiec8
그리고 MBC 팀리그에서 임요환과의 경기에 전략전인 면도 보였다.
- 생략 KTF는 3경기에서 조병호를 내보냈다. 조병호는 경기 초반부터 상대 본진 앞에 과감하게 전진게이트를 건설하고 질럿을 생산했다. 질럿이 나온 조병호는 임요환의 본진으로 들어가 SCV를 잡아내고 지속적으로 질럿을 추가해 임요환을 압박했다. 이후 드래군까지 추가하며 임요환의 머린과 SCV를 잡아내고 GG를 받아냈다. KTF 조병호, SKT 임요환·최연성 잡고 팀승리 견인(1 |
임요환에게 전략(혹은 날빌)으로 이기고 연이어 최연성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며 집중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조병호와 최연성의 상대전적은 2대 0으로 앞선 상태. 그 전에 이미 정수영 감독은 전략면에서 향상시켜주기 위해 강민과 함께 앉히도록 했고(2, 그 영향 때문이였을까? 후에 조병호는 KTF 전략코스로 부임하게 된다. 이영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테란라인과 상대적으로 약한 저그라인에 비해 단단한 프로토스 라인을 만드는데 일조, 그러나 조병호 코치는 아쉽게도 2009년 8월달에 코치직을 그만둔다.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다. 만약 조금만 더 코치 자리에 머물렀다면 KT가 우승하는 모습을 봤을텐데.
- 생략 조병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수영 감독은 조병호의 성장을 위해 강민 옆자리에 조병호를 앉히며 스스로 전략을 터득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조병호에게 부족한 전략을 채워주기 위한 배려였다. 이후 조병호는 7개월여만에 단체전 출전 기회를 잡았고, 최정상급 선수인 임요환과 최연성을 연파했다. - 생략 KTF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 성과(2 |
- 생략 강도경 코치는 2008년 이지훈 감독과 함께 팀을 맡았다. 한빛 스타즈에서 줄곧 활동하다 공군 에이스에서 플레잉 코치 역할을 했던 그는 제대와 동시에 KT에 입단했다. 이 감독과 함께-당시에는 조병호 코치가 있었다- 20명이 넘는 선수를 관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러다 조 코치가 건강상의 이유로 나가면서 관리 체계가 흔들렸다. - 생략 코치에게 투자하라…KT 정규 시즌 우승 요인(3)(3 |
그러면 KTF 테란을 이끌 새로운 유망주는 누구였을까?
출처 : 스타 고인물들도 잘 모르는 스타 뒷담화 (with 김봉준,김학수)
https://www.youtube.com/watch?v=vk4dEEJkLIQ
김봉준 : 그러면 형님. 은퇴하실 때 바톤터치 받은 사람은 누구였어요?
김정민 : 당연하지, 영호!
김봉준 : 우와 ~
김정민 : 나는 낄낄빠빠라고 하잖아. 아니다 싶으니깐 빠져주자, 나의 이런 악운, 이런 것들을 떨쳐내자. 깔끔하게 포기했고 영호가 와가지고 다 때려잡았지.
투명라인보다 더 투명한 무관심라인 윤환이 ㅠㅠ
사실 김정민의 바톤터치를 제대로 받은 테란선수는 김윤환이였다. 김정민의 은퇴 기사가 나온 날은 2006년 4월쯤, 이영호가 KTF의 연습생으로 들어왔다는 기사는 2007년 4월 쯤이니 팀에 같이 있던 적이 있었긴 했을까?
정민이 형 ㅜㅠ
기억 안나세요? ㅠㅠ
가까이 응원도 해주고 ㅠㅠ
졸업식도 와줬는데 ㅜㅜ
KTF 매직엔스<1> 물심양면 챙겨줬던 정민이 형 ‘보고 싶어요!’ - 생략 즉, 선배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하는 위치라고나 할까. (이건 추측이지만 맨처음 현수 형이 나를 부른 것은 고된 ‘막내’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계획된 의도였던 것 같다. 민구형도 ‘막내’ 생활을 청산하려고 현수 형을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ㅋㅋ) 당시 숙소에는 ‘이모님’도 계시지 않아 설거지며 빨래, 청소를 모두 내가 해야 했다. 힘들었지만 연예인처럼 느껴지던 스타게이머 형들이 나와 함께 내추럴한(?) 차림으로 밥도 먹고 잠도 잔다하니 신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형들은 나에게 어려운 선배였다. 내성적인 나는 형들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때 정말 많이 챙겨준 사람이 지금은 해설위원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정민이 형이다. 당시 정민이 형은 나에게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잔소리를 많이 했다. 지금 내 밑으로 있는 5명의 연습생을 후배로 삼고 보니 정민이 형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정성스러웠는지 깨닫게 됐다. 내 후배들은 말이 없는 선배를 둬서 좀 괴로울 것이다. 팀원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 있다. 이젠 이름을 부르면 어색할 정도다. 나는 그 별명이 좋다. 좀처럼 말이 없는 내가 팀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폭풍저그’, ‘몽상가’처럼 멋진 닉네임은 아니지만 형들이 붙여준 별명은 숙소 안에서만 통하는 김윤환의 ‘암호’같은 것이다. 김윤환 KTF매직엔스(4 |
김정민은 김윤환에게 자주 조언해주고 김윤환도 다른 선수보다 김정민을 많이 따랐다. 그러나 김정민이 김윤환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아마 그렇게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윤환의 2005 프로리그 전기리그 성적은 1전 1패. 개인리그에서도 8강에 오르는 김민구와 달리 본선진출 경험 역시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김윤환은 학생과 게이머를 병행하다보니 무리가 있었기 때문. 거기다가 결석 한번 안했다고. 부진한 김윤환의 성적과 달리 당시 KTF는 2005 전기시즌 프로리그 내내 1위를 달리고 SK T1와 결승전에 오른다. 하지만 결승전 결과는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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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포럼]KTF 김윤환, 삭발 후 프로리그 출전 승리(5 |
고로지.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해야 KTF답지
▶ 1라운드 개인별 전적 [파이터포럼/07/14][FIFO스페셜] 스카이 프로리그 1라운드 팀별 결산 (1)1위 KTF~5위 KOR(6 |
그러나 그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SK T1을 상대로 허무하게 지며 준우승을 했다. 그리고 이 준우승은 프로리그 2004 3라운드에 이어 2번째 준우승인 것이다. 아마도 결승전에 유난히 약했던 선수들과 시즌 내내 개인전 선수로는 강민만 의존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프론트는 KTF의 우승을 일조할 수 있는 개인전 선수를 탐색 시작, 특히 스타성과 우승경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테란라인을 보강하기 위해 테란선수를 찾아다녔고 마침 2005년 최고의 테란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이적을 원하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팬택앤 큐리어스 테란선수 이병민. 2005 EVER 결승전에 준우승, 2005 프로리그 전기시즌에서는 개인전 4승1패와 팀플레이 6승3패로 에이스 이윤열을 재치고 팬택앤 큐리어스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그때도 실력에 물이 올랐지만 특히 첫 데뷔 무대인 2004년도 프로리그에서 다승왕과 신인왕을 받으며 실력을 보장받았으니 같은 테란인 김윤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 뻔했다. 그가 주목받고 성장할 기회는 그렇게 놓쳐버린 것이다.
이처럼 고액 연봉으로 즉시전력을 상승시킨 KTF의 방법은 김윤환뿐만 아니라 KTF 출신 수많은 신인들의 기회를 앗아갔다. 아무리 김민구가 성장할 것 같은 기미가 보여도, 조병호가 가능성을 보여도, 김윤환이 노력해도 높은 이적료를 주고 유입한 선수들의 역량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다보니 KTF출신 신인선수가 프로리그 주전이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 어떻게보면 자본을 이용해 신인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빠르게 전력을 올려놓은 셈이다.
신인만이 문제가 아니였다. 과연 KTF는 높은 연봉을 받고 들어온 선수의 역량을 유지시킬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까? 한때 이적 선수가 KTF에만 들어오면 기량이 하락하고 먹텝이라고 불렸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왜냐면 뛰어난 선수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은 뛰어난 선수를 유지시킬 수도 없는 환경이니깐. 나중의 일이지만 자본으로 빠르게 전력을 올린 KTF는 댓가를 받게되고 그때는 프로리그 내내 1위를 달린 2005년과 정반대의 순위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댓가를 다 치루고 KTF 스스로가 선수를 키워내고 전력을 올리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에는 김윤환이 있었다.
출처
1)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236058
2)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5021102011431671006
3) http://cafe.daum.net/StarGirlYJ/MrCr/1833?q=%E
4)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ongjinho&no=530460
5) http://cafe.daum.net/fanNo1/F2y6/5912
6) http://cafe.daum.net/DDanGG/8KD/294?q=%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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